증권시장은 거대한 전쟁터다.

기관과 개인들이 뒤엉켜 만인에 대한 결전을 치러내는 곳이다.

화려한 인기뒤엔 초라한 퇴장도 적지 않지만 증권시장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작전의 무대"에는 저마다의 무기로 싸우는 독특한 개인과
집단들이 있다.

신설D증권 서초지점장이었던 Y씨와 송파지점장이었던 P씨는 종목개발을
주특기로해 한때의 증권계를 풍미했던 인물들이다.

"한번 손대면 적어도 3-4배의 시세를 낸다"는 신화를 창조했지만 영광의
시간들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지금은 주가조작의 범법자가 되어 검찰
신세를 지고있다.

J증권 K차장은 D상고파로 불리는 "지하 결사체"의 수장으로 알려져있다.

공식적으로는 J증권광교지점의 특수업무팀을 이끌면서 한달에 4백억원의
약정을 올려 화제를 모았던 인물.

공조직과 사조직을 교묘하게 엮어 정보전에서 기선을 잡는다는 것이
K차장의 주특기다.

그런 그도 지난달 3년여를 유지해왔던 특수업무팀을 해체하고 잠행기로
들어갔다.

증감원의 일제검거식 조사가 진행된 것이 공사조직을 모두 해체한
배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정종목의 매매를 인연으로 이합집산하는 스타군단도 빠질수 없다.

지난한해 기록적인 시세를 냈던 삼부토건 주식에는 종횡으로 연결된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그것만으로도 일대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대기관투자가들의 펀드매니저가 모두 동원됐고 이들을 묶어내는
책사가 있었다.

피스톨 박이나 라이플 장,심바람같은 이들이 춘추전국의 군웅들이었다면
영국계 B증권에 근무하던 이모씨는 이들을 합종연횡으로 엮어낸
인물이었다.

통일천하에 나오는 소진이라고 불릴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길을 달리하고있다.

한건의 종목연구로 스타덤에 올랐던 이과장은 주가조작의 오명을 쓰고
은퇴상태에 있고 라이플 장으로 유명했던 한국투자신탁의 장과장도
지난해말 펀드매니저에서 조사부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피스톨박으로 불렸던 제일은행의 박차장도 최근에 D은행으로 근무처를
옮겼고 신바람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교보의 펀드매니저 심부장도 주식
담당에서 채권담당으로 보직을 바꿨다.

람보같은 파괴력이 돋보였다는 별명 "M60"의 모은행 펀드매니저도
이시절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한편에선 고독한 승부사들도 나름의 시세를 놓고 전쟁을 치르고있다.

부산의 정모씨는 기관들의 전쟁터에 단기필마로 뛰어든 인물이었다.

공인회계사출신인 정씨는 증감원에서 시세조작여부를 조사받기도했으나
험잡을데 없는 매매로 오히려 절정의 고수임을 입증받았다.

만호제강을 오늘의 초고가주로 만들어냈고 현재는 새로운 종목을
다듬고 있다.

증권시장의 숨은 스타는 헤아릴 수 많다.

겉으로 드러난 스타들보다 수면 아래서 무서운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그 모습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 줄 게 틀림없다.

소공동일대에 H증권 신이사를 중심으로한 69학번파,H투신 K과장을
축으로 한 서울대파,S은행 J과장을 둘러싼 연상파들도 이 무리에
포함될 수 있다.

한판 멋진 승부를 위해 오늘도 칼을 다듬고 있는지 모른다.

증권가의 하늘엔 홀로 빛나는 북극성도 있지만 그 주위에는 무리지어
빛을 내는 성군들이 있어 한폭의 멋진 하늘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