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웅 < 현대경제사회연구원장 >

올해는 임금협상이 더욱 힘들것 같다.

노총은 지난해 11월 경총과의 임금협상 거부의 뜻을 일찍부터 밝혀놓고
있다.

그때문에 3월초면 발표되던 임금 가이드라인이 아직 그 실마리도 못풀고
있는 실정이다.

임금의 인상폭은 정부 기업가 근로자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이기에 이것을
정하는데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임금인상수준이 경제적인 논리보다는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서
결정되어 왔다.

대의를 앞세워 사회적합의라는 이름으로 임금인상률의 수용을 강요해
왔으나 이러한 합의가 한계를 보게된 것이다.

어느때보다도 임금인상폭이 정부에는 아주 예민한 문제다.

국제경쟁력제고를 위하여 정부가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내걸고
있는 이때 과도한 임금인상은 이러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기 때문
이다.

지난20년을 분석해보더라도 비용상승 요인이 물가상승의 주요인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에 미친 영향이 가장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높은 인건비는 이미 국제경쟁력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과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경총은 올해도 사회적
합의에 의한 임금 가이드라인이 정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노총의 입장은 다르다.

사회적합의라는 이름의 임금억제방식에 근본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중앙단위 합의보다는 개별 노조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
한다.

지난해의 임금협상타결 결과를 보면 중앙합의보다 높은 수준에서 임금을
타결한 사업장이 전체의 40%에 이르러 이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노사양측이 수긍할수 있는 논리적인 임금인상률 산정
기준이 없다는데 있다.

생산요소중에서 노동력은 국제간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세계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에 의한 가격형성이 어렵다.

더구나 임금은 자본이나 토지의 가격과는 달리 하방경직적이어서 경쟁력
제고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쉽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임금상승률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개도국
보다도 높았었다.

특히 노동운동이 활성화된 87년이후의 상승률은 이들 나라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국제간 명목임금 비교자료에 의하면 93년을 기준으로 미국
제조업 근로자의 임금을 100으로 할때 일본은 114로 높은 반면 싱가포르
대만 홍콩은 각각 32,31,26으로 우리나라의 32와 비슷한 수준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1인당 GNP수준이 싱가포르 대만 홍콩등에 비해 훨씬
낮은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임금수준이 높다는 것을 쉽게 알수 있다.

만약 이 임금수준을 각국의 물가수준을 반영한 실질적인 구매력으로 환산해
보면 미국의 100에 대해 일본의 임금수준은 77로 하락하며 우리는 43으로
높아지게 된다.

우리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싱가포르와 홍콩이 겨우 34와 31인 것을
보면 우리는 "국빈민부"가 된 느낌이 든다.

최근 국제경쟁력 회복을 위한 임금안정의 필요성이나 경제의 안정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협조적인 노사관계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는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임금협상 당사자인 노총과 경총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임금인상률을
산정하고 있으므로 노사간의 의견일치를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양측의 임금인상률 산정방식이 과대 혹은 과소하게 계산할 목적으로 시작
했다는 점에서 이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까닭이다.

노총의 임금 인상률 산정방식은 몇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로 대부분 근로자의 임금수준이 최저생계비를 크게 넘어선 지금까지도
임금인상률 기준으로 최저생계비 상승률을 사용하고 있고, 둘째 주장하는
임금인상이 생계비와 생산성의 변화를 함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설사 임금인상이 생계비상승이라는 단순논리를 인정하더라도
노총이 조사한 최저생계비가 너무 높고 상승률도 정부의 통계자료와 괴리가
커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경총의 산정방식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생산성에 기초를 두고 있기는 하나 생산성산정에 농림어업부문
을 포함시킴으로써 실질적인 제조업 부문의 생산성향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과거의 과도한 임금인상으로 인한 경쟁력 상실분을 보상받으려는
논리는 근로자들에게 설득력을 잃고 있다.

OECD 가입을 눈앞에 둔 지금 임금협상에 있어서도 노사가 성숙한 모습을
보일 때다.

노사 모두가 명분이나 정략적인 목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사자가 모두 공감할수 있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임금인상률 산정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실체적 생산성 임금제"채택을 권하고 싶다.

실체적 생산성 임금제에 의한 임금상승률은 경총에서 주장하는 농림어업
부문을 포함시킨 과소평가된 것이 아닌 제조업의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을
반영하는 것이며 동시에 물가상승률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세계 기업들이 우리기업의 경쟁자들임을 생각하면 생산성을 넘어선 임금
인상은 노사 모두를 파멸의 길로 몰고가는 것이다.

우리도 선진국의 기업들이 실질적인 생산성 임금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를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