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작가들이 잇따라 장편을 발표,주목을 끌고 있다.

김소진씨(32)의 장편소설 "장석조네 사람들"(고려원간)과 이부직씨(49)의
늦깎이 데뷔작 "삼십년보다 길었던 그 열흘"(고려원간)이 화제작.

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에 연루됐던 김은숙씨(37)도 첫장편 "이성이
잠들면 요괴가 눈뜬다"(풀빛간)를 내놓았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한지붕 아래 아홉가구가 올망졸망 모여사는
"기찻집"사람들의 애환을 다룬 연작장편.

소외된 도시서민들의 걸쭉한 입담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

연작중 하나인 "두장의 사진으로 남은 아버지"는 작가의 두번째 창작집
"고아떤 뺑덕어멈"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맥을 같이한다.

2장의 사진중 하나는 영정에 쓸 요량으로 주민등록증 사진을 확대해
만든 것인데 세상살이에 지친 표정을 담고 있다.

또다른 것은 선거벽보용 사진으로 그속에서 아버지는 온화하고 자신감에
가득찬 얼굴로 웃고 있다.

두개의 상반된 모습중 참모습은 물론 앞의 것이다.

그러나 참담한 패배가 예견된 선거에 도전했던 벽보속의 아버지는 내가
삶이 버거워질 때마다 들여다보는 또다른 모습이다.

개표가 끝난뒤 벽보를 벗기면서 아버지는 꿈에 귀인을 만났다고
말하는데 그 귀인은 북에 두고온 부인이다.

이부직씨의 "삼십년보다 길었던 그 열흘"은 오십줄에 접어든 한 여인이
남편과 사별한뒤 과거찾기여행을 통해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그녀가 부산행열차 속에서 떠올리는 과거는 먹빛이다.

여상졸업후 취직이 안돼 부산으로 내려간 그녀는 신발공장에 다니다
같은방 친구의 애인에게 강제추행당하고 급기야 그와 동거,원치않는
애를 낳는다.

아이를 병원에 버려둔채 서울로 온 그녀는 허름한 공장을 운영하던
남편과 만나 결혼하고 아들까지 뒀지만 30년을 살아온 남편과 사별하자
가슴 한켠에 밀쳐둔 과거가 되살아난다.

부산에 도착해서 병원의 출산카드를 찾던 그녀는 2년전 한 중년남자가
가져갔다는 말을 듣는다.

아이의 전화번호를 입수해 수소문하던중 옛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놀랍게도 그아이와 한건물에 있으면서 모른채 지낸다.

얼마후 그녀는 송도해변에서 부자간의 상봉을 주선하고 자신은 숨어서
지켜보며 과거란 그자체가 완벽한 하나의 존재임을 깨닫는다.

김은숙씨의 "이성이 잠들면 요괴가 눈뜬다"는 격정적인 80년대와
혼란의 90년대를 걸개그림과 벽화운동으로 대비시킨 작품.야학활동으로
20대초반을 보낸 네사람이 주인공이다.

작가는 격랑의 시대속에 살다간 두 연인의 꿈이 세상에 남겨진 두사람의
삶에 어떤 무게로 실리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고두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