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쳐 만든 재정경제원을 흔히들 "공룡"이라고
부른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는 뜻에서 일게다.

세제과 금융 재정은 물론 거시경제정책 수립기능 까지 한손에 틀어쥐고
있으니 달리 비유할 데가 없을만도하다.

하지만 재정경제원을 공룡이라고 부르는 데는 또다른 의미가 함축돼 있다.

흔적도 없이 멸종돼 버린 덩치 큰 동물로써의 이미지다.

지나치게 비대해져 제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뒤뚱대다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괴물같다는 얘기다.

요즘 재경원의 몸놀림을 보노라면 후자의 모습이 더잘 떠올려 진다.

멸종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공룡의 모습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임대주택사업자 등록기준 완화 사건.

지난 7일 물가대책 차관회의 자료를 통해 집을 두채만 지어 임대해도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을 허용해 양도득세와 지방세를 감면받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룻만에 뒤집은 일이다.

같은 재경원 내의 부서이면서도 물가관리 부서인 국민생활국이 발표한
것을 세제실에서 뒤엎고 또다시 국민생활국이 나서 세제실의 발표를 부인
하는 소동을 벌였다.

같은 부처의 실국이 한가지 일을 놓고 한쪽에서는 전세값안정을, 다른
쪽에서는 부동산투기 재연우려를 주장하며 아귀다툼을 벌인 결과다.

사전조율도 없었고 사후협의도 없었다는 반증이다.

공룡으로 비유하자면 머리와 몸통, 왼발과 오른발이 제각각 노는 모양이다.

대우의 경남기업 부채인수에 따른 세금감면 결정도 유형은 다르지만 원칙
없이 갈팡질팡 한 전형적인 사례에 속한다.

당초 약속한 산업합리화 조건을 어긴만큼 세금감면은 있을 수 없다더니
느닷없이 산업합리화 조건자체를 변경해서 세금을 깎아주기로 했다.

지난달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낼때는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 행사해 오던
권한중 대기업 여신한도 결정권등을 재경원으로 가져오겠다고 했다가 비난이
일자 몇시간만에 번복한 일도 있다.

"정책독과점"이라고 할만큼 경제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재경원의
이같은 난조는 결국 기업과 국민의 혼돈으로 이어진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공룡의 멸종은 자신만의 소멸로 끝냈지만 재경원의 부실은 국민경제 전반을
부실하게 하기에 공룡보다 더 위험하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