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이란 화가의 자서전이라고 얘기할수 있어요. 그림속에서 자신을
찾는 작업이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자화상의 역사는 곧 화가들의 끊임없는
자의식발현 노력의 변천사지요"

르네상스이후 서양미술사의 중요한 한부분을 차지하는 자화상과 그
화가들의 궤적을 그린 "화가와 자화상"(예경간)을 펴낸 조선미교수
(성균관대박물관장)는 자화상연구를 통해 화가들의 의식의 흐름을
이해할수 있게 됐다고 얘기했다.

"자화상은 억지로 그린 것이 없어요. 자기충동에 의해 떠밀리듯 그린
것들이어서 화가의 본능과 진지함이 살아있죠"

자화상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

"자화상은 르네상스시대부터 생겨났어요. 처음에는 입회자화상이란
형식을 빌렸죠.자기신분을 숨긴채 화면에 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17세기 바로크시대의 렘브란트에 오면 화가들은 하나의 성숙된
인간으로 붓과 팔레트를 들고있는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화폭속에
드러내게 되죠"

특히 19세기 표현주의시대에 오면 외적인 모습뒤에 자조나 자기혐오등
숨겨진 개인만이 가지는 독특한 내적억압성분,즉 에고밑에 감춰둔 이드의
표출이 시도된다는 것.

그는 그러나 어떤 위대한 화가도 자화상을 통해 자기세대가 아닌
뒷세대의 자의식세계를 나타내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네델란드화가 고야는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검은그림"시리즈에서 고야가 보여준 개인적인 억압성분의 강렬함이나
인간내부에 잠재하는 수성에 대한 화가로서의 고발의식은 현대적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야의 자화상에서는 그런 의식을 찾아볼수
없다는 것.

조교수가 자화상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83년 박사학위논문 "한국의
초상화"를 발표한 뒤부터.

"한국화중에서 자화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요. 화원화가들은 자신의
신분때문에,사대부들은 미숙함때문에 기피한 것이죠"

조교수는 "화가와 자화상"이 미술전공자는 물론 일반인들의 미술사및
인간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자화상만큼 동시대인의 삶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화가와 자화상"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렘브란트,루벤스,
고갱,피카소,에곤 쉴레,막스 에른스트,프리다,칼로등 미술사에 기록된
작가 70명의 자화상 403점이 실려있다.

조교수는 서울대외교학과와 동대학원미학과 홍익대대학원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문화재전문위원.

< 오춘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