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들께서 어떤 부탁을 하셨는지요?"

보옥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다그쳐 물었다.

"영국공과 녕국공 두 분께서는 나를 보자 당신을 염려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기울고 있는 가씨 집안의 가세를 일으키고 가업을
이어갈 자손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가보옥 당신밖에 없는데, 방자하고 고집이
세어 제멋대로 행하는 당신을 바르게 이끌어줄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 나보고 정욕과 성색같은 것으로 당신을 일깨워 미로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없느냐고 부탁하는 거예요"

"정욕과 성색 같은 것으로요?"

보옥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잠시 짓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정욕과 성색이라면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요?
나는 여자를 안은 경험이 없어 잘 모르긴 하지만 책에서는 그렇게
읽었는데요. 공자께서도 "논어"에서 군자는 세가지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젊을 때는 혈기가 안정되지 못한지라 여색을 경계해야 하며, 장년에
이르면 혈기가 바야흐로 강해지는지라 쟁투를 경계해야 하며, 노년에는
혈기가 쇠하는지라 명예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지요"

"나도 그게 이해가 잘 안 되어, 그런 식으로 당신의 마음을 잡아주려고
하는 이유를 물었지요. 그랬더니 두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자기들의
인생 경험에서 터득한 것이라 하더군요.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방황하며 꽃놀이에 빠지고 화투놀이에 빠지고 술에 빠지고 하는
것은 정욕이 충분히 만족되지 않아서 그렇다나요. 좋은 대상을 만나 정욕이
충분히 만족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을 잡고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된다
이거지요"

보옥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런 일을 경환 선녀님에게 부탁을 하는 거지요?"

"처음에 당신에게 나를 소개할 때 말씀드렸잖아요. 나는 인간 세상의
애정문제와 남녀의 치정관계를 맡아보고 있는 선녀라고요"

"그러니까 경환 선녀님은 나에게 여자를 안는 방법과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다 이거군요"

"그런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자를 안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뜨겁게
일어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요. 나는 사람들 속에 그런 마음을 심어주는
일을 먼저 하고 나서 그 다음 운우지사의 비책을 가르쳐주지요"

"운우지사라면?"

보옥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