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산업부가 구상중이던 "신산업정책"이 사라졌다.

박재윤통산부장관이 산업정책전반에 관한 통산부의 공식입장을 신산업정책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발표할필요가 없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신산업정책은 김철수전상공자원부장관이 작년말 삼성에 대한 승용차사업
진출허용이후 산업정책에 대한 따가운 비난여론을 의식, 정부개입을 최소화
하는 방향을 골자로 한 새로운 산업정책을 내놓다고 밝히면서부터 관심을
끌어왔다.

이와관련, 통산부는 작년 12월3일 세미나자료형식을 빌려 "세계화를 지향
하는 신산업정책"을 제시했고 최종안은 3월말까지 발표키로 했다.

정부조직개편으로 작년 12월24일 통산부장관으로 취임한 박장관도 새로운
정책수단을 개발해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취임직후 말했다.

그러나 박장관취임후 2개월째인 요즘 통산부에서는 신산업정책에 대한
논의가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

특별히 발표할 것도 없는데 괜한 기대나 관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장관의 입장이 산업정책담당자들의 입을 닫게 한 것이다.

통산부실무자들은 발표할 내용을 모두 만들어놓고 기다리다 책상서랍밑에
던져넣어 버렸다.

이에따라 앞으로도 개별적으로 정책들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기업의 신규업종진출을 막는 도구로 이용된 기술도입신고문제는
4월부터 새로 시행되는 외환관리법시행령을 통해 신고절차가 대폭 완화되는
내용으로 정리될 전망이다.

방위산업 원자력등 국가가 직접 챙겨야 할 사안만 빼고 기술도입신고는
신고만으로 모든 절차가 끝나도록 해 더이상 간섭이나 개입의 도구로 악용
하지 않는다는 구상이다.

또 산업정책에 포함시키려던 업종전문화 입지공급확대 기업환경개선및
기술개발도 개별 사안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산부관계자는 산업정책이 어떤 형식으로 취해지든간에 경쟁촉진과 자율
확대를 기조로 하고 있는 만큼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경쟁촉진과 자율확대라는 추상적인 구호가 구체적으로 일관성
있게 실현되겠는냐는데 있다.

정부가 산업정책에 관해 어느정도 역할을 해야 할지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은채 그때그때 정책을 취할경우 일관성이 흐트러지거나 상황논리나 정치
논리를 쫓을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통산부가 신산업정책발표를 취소한 것은 종합적으로 담을 내용
이 마땅치 않기도 하지만 정부의 적정한 역할설정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된
때문이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박장관이 신산업정책발표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고 말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신산업정책의 기본 정신은 자율확대일수 밖에 없고 그럴 경우 자칫하면
과잉 중복투자등 적지않은 부작용을 감수할수 밖에 없는데 박장관이 이를
떠안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종합적인 정책발표를 피하고 개별 사안별로 그때 그때 처리하는 각개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결국 신산업정책은 삼성에 대한 승용차사업허용의 대의명분용으로 수면위로
부각됐다가 실체도 없이 증발됐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신산업정책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아니어도 좋지만 산업정책의 방향과 정부
의 역할을 어떤형식으로든 분명히 해주어야 한다는게 경제계의 주문이다.

< 고광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