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문명과 상반되는 개념이다.

우리들이 땀흘려 건설한 빌딩 도로 공원등은 모두 문명이 되지만
그것들 자체가 문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란 문명에다가 어떤 형태로든지 어떤 정신적인 가치를 포함
시켜야 성취될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요즘 흔히 말하는 고스톱문화나 목욕탕 문화가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화투를 고급화시킨다거나 목욕탕
시설을 현대화시키는 것 자체가 문화는 아니다.

이렇게 보면,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것 자체가 문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독서습관,자가용을 이용할 주말의
문화탐사여행, 택시기사의 친절도등만이 문화의 대상이 될수 있다.

그러면 현재 우리들의 자동차문화는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

첫째, 우리는 자동차가 빚어내는 혼잡 오염 위험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주차장이 된 고속도로, 하루만 시내를 돌아다니면 흰셔츠의 칼라가
까맣게 될 정도의 대기오염, 보험을 3~4개 들어도 불안한 잦은
사고욜 등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집을 사기전에 자가용부터 사야 된다고
생각하는 반인간적인 상념을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을 직접 몰고 다녀야
문화인이 된다는 반문화적인 상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왕이면 더욱
고급의 승용차를 운전애햐 더욱 고급 문화인이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한결같이 문명과 문화의 구별을 모르는
바보짓일 뿐이다.

둘째, 자동차를 대하는 우리들의 개념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운전
습관도 극히 반문화적이다.

자동차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며 사람이 자동차릉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명한 진리가 우리들의 운전생활에서는 산산히 부서지고
있다.

보행자가 건널목에서 자동차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린다거나 영업용
택시에게 목적지까지 갈수 있느냐고 묻는 교통질서는 아마 이세상에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요즘 택시는 손님의 의사도 묻지않고 합승을 시켜 마치 짝짓기
를 하는 듯하며 시간배정이 빠듯한 노선버스의 시내 질주는 깽단
영황의 한장면을 연상시킨다.

분명히 자동차는 자전거에 양보하고 자전거는 보행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교통질서의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셋째,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고해서 언제나 자가용으로 외출해야
돠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넉넉잡아 30분이면 걸어갈수 있는 직장을 꼭 자동차
로 출근한다.

그리고 퇴근한 다음에는 호텔 헬스클럽에 가서 열심히 땀을 뺀다.

참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특히 갑작스런 조깅보다는 천천히 걷는 것이 훨씬 건간에 좋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제 자동차가 신분의 표시가 되는 시기는 지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자동차의 고급화 작전이나 노선변경에만
신경을 쓰지말고 그것이 바로 문화의 대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