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은 가격보다도 연구개발력과 기술의 우위성이 대내외경쟁력을
좌우한다.

이때문에 현재 전세계제약시장을 지배하는 제약업체들은 수많은 물질특허를
갖고 있고 10여개이상의 신약을 갖고 있는 기술집약적 기업들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약이 단 하나도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국내제약업체의 영세성과 관계있다.

보통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데는 10년이상의 시간과 1천억원이상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1위제약업체조차 1년매출액 2천억원을 넘은지 불과 2,3년전
이다.

또 연간매출액이 1천억원을 넘는 업체라야 전체 3백80여개중 12,3개에
불과하다.

창업초기부터 생산보다는 판매중심으로 운영되어 오고 연구개발을
등한시해온 국내제약업체의 경영풍토도 신약전무를 낳은 요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자성한다.

영업에 무게중심을 두는 체제이다보니 연구개발인력을 충원하고 연구개발에
투자할 비용여력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영업중심체제는 또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자체개발의약품보다는 외국
의약품의 수입판매나 빠른 시일내에 모방이 가능한 수입대체품의 제조
판매에 치중하게 만든다.

이때문에 제약업계가 연구개발에 나선것은 긴 역사에도 불구, 80년대나
되어서이다.

현재 매출액대비 3%이상을 연구개발비에 꾸준히 투자하고 연구인력만
1백명이 넘는 이른바 A급연구개발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곳은 유한양행,
동아제약,녹십자,중외제약 4곳.

신약개발에 필수적인 전임상시설인 동물실험센터라도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곳은 3백80여개에 달하는 제약업체중 유한양행과 동아제약 단 두업체
이다.

이같은 열악한 현실속에서 현재 유한양행,동아제약,중외제약과 선경은
자체적으로 신약후보물질을 만들어내고 현재 임상단계에 진입해있다.

이가운데 동아제약은 안트라사이클린계항암제(DA-125)를 개발하고 3월중에
임상II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선경제약과 선경인더스트리가 공동개발하고 있는 제3세대 백금착체항암제
(SKI-2053R)도 지난해 임상I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최근 임상II상에
들어갔다.

유한양행은 간장질환치료제인 YH-439의 임상I상을 지난해 독일에서
마쳤으며 빠르면 상반기중 임상 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순수국내기술은 아니지만 중외제약은 일본 주가이제약과 공동설립한 C&C
연구소가 개발한 퀴놀론계항균제 Q-35가 지난해 5월 임상II상에 진입했다.

또 신약이라기 보다는 약물전달체계를 개선한 전달체계개선제(DDS)인
동신제약의 붙이는 당뇨병치료제인 인슐린패취가 현재 임상II상보완실험과
III상을 동시에 진행중이다.

이 제품은 빠르면 오는 10월말 상품화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현재 전임상단계(동물실험)에 있으며 향후 임상진입이 예상되는
신약후보물질로는 20여가지가 있다.

여기에는 럭키가 지난 91년 영국 글락소사에 기술수출한 세파계항생제
후보물질등 항생제가 가장 많다.

약품군별로는 9건의 항생제와 3건의 항암제, 5건의 심혈관계약물,
위궤양치료제, 항바이러스제, 소염진통제, 간장질환치료제등이 임상진입을
앞둔 신약후보물질들이다.

제약업체들이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제법특허나 신물질단계
에서 기술을 수출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신물질합성까지는 성공해도 국내의 임상경험부족과 임상실험기술수준
이 아직은 낙후한 수준이라 위험을 분산시킨다는 의미에서 초기단계에서
이익을 가시화시킨다는 전략이다.

럭키의 세파계항생제, 한미약품의 세파계항생제제법특허, 화학연구소가
영국 SB사에 수출한 퀴놀론항생제가 이에 해당한다.

유한양행의 간질환치료제는 일본 그레란사에 일본내 라이센스계약을 체결
했고 화학연구소와 동아제약이 공동개발한 비마약성진통제도 일본
야마노우치사에 라이센스로 기술을 수출했다.

이처럼 어려운 과정에도 불구하고 제약업체들이 신약개발에 매달리는 이유
는 명확하다.

우선 자체적으로 신약을 보유하지 않고는 앞으로는 오래전에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 누구나 만들 수 있으므로 가격경쟁에 매달려야 하는 싼 의약품만
만들고 팔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또 유통시장이 개방되고 있어 앞으로는 다수의 신약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
업체에 국내시장을 그대로 내줘야하게 됐다.

이처럼 일단 국내시장이라도 지켜야 하겠다는 절박한 사정도 있으나 신약
개발이 가져다주는 혜택도 엄청나다.

세계적 신약을 하나 만들어내면 막대한 이익이 보장된다.

물질특허를 통해 전세계시장에 걸쳐 독점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궤양치료제인 잔탁을 개발한 영국의 글락소사는 잔탁 한
품목만 지난 92년중 전세계시장에서 34억달러(2조7천억원)어치를 팔았다.

같은 해에 한 품목의 매출액만 10억달러를 넘는 신약이 11개에 달했으니
세계적 신약의 위력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나의 신약개발에 10년간 1억달러를 투자했다하더라도 한 해에 10억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이라면 엄청난 장사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제약업체들의 연구개발비투자비율은 매출액대비 15%나 되고
일본업체들도 10%수준에 달한다.

이처럼 연구개발비에 투자를 많이해도 매출액대비 경상이익율은 머크사가
20.6%, 글락소가 24.5%, BMS나 산도스등은 17%이상으로 각국의 초우량기업
으로 꼽힌다.

국내제약업계는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투자가 필요한 신약개발은
정부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해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지적
한다.

제약산업은 두뇌기술집약적이고 타제조업에 비해 1.47배이상 높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산업으로 빈약한 자원에 인구가 많은 한국에
가장 적합한 산업이다.

제약산업이 추구하는 신약개발은 정보통신과 더불어 21세기를 주도할 생명
과학산업의 핵심에 놓여 있다.

21세기의 선진국진입을 위해 더이상 미룰수 없는 전략산업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