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부터 시작되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은행가에 회오리 바람이
불어치고 있다.

은행가에 풍미하는 소문에 의하면 작년에 최상의 실적을 보인 대형
시중은행의 행장이 정부당국의 3연임 불가 종용에 따라 퇴진하게
되었다 한다.

이렇게 되면 두번째 임기가 곧 끝나는 또 다른 두개 은행의 행장도
물러나야 한다.

이 경우에 속하는 어느 유망 지방은행의 경우에는 주주.종업원.지역주민들이
집단으로 반발할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3연임 불가와 함께 상근회장제 도입불가와 임원수 동결까지도 정부당국이
강요하고 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이러한 소문이 만약 사실이라면 심각한 의문과 문제를 제기
한다.

첫째는 은행경영의 자율화도 못하는 판에 과연 세계화가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물론 과거처럼 특정인의 선임을 위한 영향력 행사보다는 인사방침에
간섭하는 것이지만 인사상의 자율침해는 마찬가지이다.

작년 5월에 발표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의 국가별 경쟁력 비교연구에
의하면 93년도 금융부목에서 한국은 15개 개발도상국과 22개 선진국중에서
최하위인 37위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의 은행경영 자율성은 심각하게
위축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하여 문민정부는 금융기관의 기업성 회복을
줄곧 주창하였으며,이를 위한 자율인사의 원칙을 천명하여왔다.

그러나 자금의 인사간섭으로 정부는 스스로 이 원칙을 포기하고
말았다.

둘째는 정부당국이 은행의 인사방침에 간섭함으로써 자율화 책임의
전제하에 추진하고 있는 경영혁신운동의 분위기를 파괴한다는 문제이다.

은행들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경영혁신활동이 성공하기
위하여는 최고경영진의 단합된 팀웍과 최고경영자의 리더쉽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능력과 실적평가에 의해서만 은행장의 연임여부를 은행이 자체
결정토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건이다.

만약 정부조직축소의 와중에서 은행에도 물갈이가 있어야 혁신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인사에 관여한다면 가부장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오히려 한국의 은행들을 오래동안 낙후시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실 정부에 의한 은행장의 빈번한 교체였다.

규모가 큰 은행을 변화시켜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일련의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구체적인 실행을
전개하는데는 최소 2~3년의 기간이 소요되며 그 성과가 분명하게
나타나려면 5~6년의 긴 기간이 필요하다.

경영혁신이란 구성원들의 외식개혁과 자발적인 행태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매우 어려운 걱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30여년간 관치금융하에서 대형 시중은행장의 평균 재직기간은
고작 2,3년에 불과했다.

주요 5개국 3대 대형은행장 평균 재잭기간 6.6년의 3분의수준이다.

그리고 평균 역사가 100여년인 세계 최우수 18개 기업의 최고경영자
평균제직기간 17.4년외 겨우 8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최고경영자가 이렇듯 빈번히 교체되는 풍토하에서는 최고경영진의 팀웍이
전제되어야하는 경영혁신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GE의 전설적인 웰치 회장
같은 비전을 갖춘 최고경영자가 태어날수 있는 싹은 아에 생겨날수도 없다.

물론 최고경영자의 장기재직이 우수기업의 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능력과 실적에 따라서는 장기재직도 할수 있는 가능성은
반드시 열려 있어야한다.

정부당국에서는 이제 은행의 행장과 임원 인사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만약 은행의 공공성과 앉 성을 유지하기위한 목적으로 인사방침에
관여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당연히 공론을 거쳐 투명한 규정을
마련해야한다.

만약 그렇게 할수 있다면 최고경영진 인사방침에 부당하게 간섭함으로써
은행의 혁신과 변화의 몸부림에 찬물을 끼얹는 우를 더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

3연임 가능성 여부에 따라서는 곧 닥아오는 은행주총에서 임원진
구성이 달라질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은행최고경영진간의 절묘한
균형과 미묘한 역학관계가 깨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정부당국에서는
깨달아야한다.

기업의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을 담보하는 적절한 기업통치체제의
구축이 국가경쟁력 확보의 중요한 요건과는 사실이 구미에서는 광범위하게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문민정부는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한 규제완화와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실천적 의미를 과연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지극히 의심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실로 안타깝다.

이와같은 외구심은 대기업문제와 같이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문제에
대한 정책방향의 실종에도 연유하지만 은행의 책임경영이 가능하려면
자율경영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지극히 명쾌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생겨나는 것이다.

자율과 책임하에 기업이 경영되는 풍토의 조성은 문민정부가 부르짖는
규제완화와 세계화의 추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특히 소유경영보다는 전문경영이 불가피한 금융기관의 경우 자율경영의
풍토는 더 더욱 중요하다.

문민정부가 진정으로 세계화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이에 역행하는
은행인사의 자율권 침해부터 중단하여야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