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16일 경제학자 1천명의 서명을 받아 한은독립을
공식요구함에 따라 한은독립문제가 또다시 전면으로 떠올랐다.

지난 연말 여야간에 한은법을 "95년초 국회에서 전향적으로 검토개정"키로
합의했던 만큼 한은독립논쟁은 앞으로 정치권에서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잠잠했던 한은독립문제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되면서 부터다.

재정금융과 예산을 쥐고 있는 재경원이 너무 비대진 만큼 이를 견제하기
위해 한은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야당과 경실련등 민간단체들이 이 문제를 적극 들고 나왔고 이번에
대학강단의 경제학교수들까지 대거 서명에 참여하게된 것이다.

그러나 한은법이 어떤 형태로 개정되고 한은독립이 어느수준에서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재경원은 정책의 효율성을 들어 한은에 많은 권한을 넘기는데 반대하고
있고 한은은 한은법을 개정하는 기회에 가능한 많는 것을 얻어내겠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두 기관의 인식차이가 너무 큰데다 무엇이 진짜 한은 독립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도 결론을 쉽게 내리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은독립과 관련 쟁점사항은 크게 세가지로 나눠볼수 있다.

첫째는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의장을 누가 맡느냐는 문제다.

이는 정부와 한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와도 맞물려있다.

현재 금통위의장을 한은총재가 겸임한다는 데까지는 정부와 한은의
생각이 일치한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금통위의장이 한은총재를 맡는 것인지,한은총재가
금통위의장을 맡는 것인지가 논란이다.

일본처럼 금통위의장이 한은총재를 맡는 것은 금통위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재경원에서 사실상 금통위원들을 선임하는 체제에서
이는 금통위가 사실상 정부의 원격조정을 받게 된다고 볼수도 있다.

재경원에서 이 방식을 선호하고 있고 민주당도 금통위원 선임에
한은이 좀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다는 전제하에 여기에 동의한다.

반면 경실련과 한은은 한은총재가 금통위의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정부의 간여를 배제해 정책수립의
중립성을 높일수 있다는 논리다.

두번째는 은행에 대한 감독기능을 어디서 갖느냐는 문제다.

은행의 감독권은 현재 한은이 갖고 있다.

그러나 독립된 한은이 감독권까지 지니고 있으면 재경원에 이어 또
하나의 비대 조직이 태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한은은 금융자율화가 진전되면서 정책당국의 통제력이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은행들에 대한 칼자루인 감독권을 정부에서 가져간다면
통화정책을 실효성있게 구사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감독권없은 한은 독립은 종이호랑이 불과하다는 생각이어서 감독권의
정부이양여부가 한은법개정의 핵심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는 한은 업무의 관할범위.현재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 영역에
포함되는 곳은 일반은행들 뿐이다.

제2금융권은 물론 은행의 신탁계정도 한은의 통제밖이다.

따라서 한은이 총유동성의 30%만을 관리하고 있어 통화정책을 제대로
구사할수 없다는 지적이다.

효율적인 통화관리를 위해 재경원에서 직접 관할하고 있는 제2금융권은
물론 외환부문도 한은의 고유기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한은의 생각이다.

물론 한은법 개정이 곧 한은독립을 뜻하지는 않는다.

또 한은에 많은 권한을 줄경우 과연 한은에서 이를 수용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시하는 견해도 많은 편이다.

일본처럼 법적으로는 중앙은행의 위상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중앙은행총재를 대장성과 한은에서 번갈아 맡으면서 대장성과 한은이
운영의 묘를 살리는 나라들이 많다.

재경원과 한은이 법개정과는 별도로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을 구사하기
위한 방법론이 무엇인지 지혜를 모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육동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