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보가 그런 말을 입밖에 낸 것은 처음이었다.

그말은 결국 앞으로 10년간 더 독재권력을 유지하겠다는 뜻이었다.

신년 초에 그는 속으로 혼자서 그런 생각을 굳혔었다.

서남전쟁의 마무리로 이제 거리겔 것이 없으니 말하자면 창업의 시대는
지나간 셈이었다.

다음 10년을 성업의 시대로 보고 그때까지만 국사를 담당하리라. 그러면
어느덧 60고개에 바싹 다가서는 터이니, 이선으로 물러나도 섭섭할게 없다
싶었다.

그다음 마무리하는 시기인 10년은 이토에게 물려주어야지 하고 마음을
정했던 것이다.

서남전쟁이 승리로 끝난 뒤 오쿠보는 한동안 매우 심정이 착잡했었다.

공인의 입장, 즉 통치자로서는 골칫거리였던 가고시마 아태를 끝장냈으니
이제 국정 수행에 거리낄 것이 없어 매우 후련한 심정이었으나 한 인간으
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수 없었다.

상대가 사이고였으니 말이다.

만약 사이고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일으킨 반란이었다면 눈썹 하나 까딱
안할 오쿠보였다.

아무리 냉혈적이고 강인한 오쿠보지만 어린 시절부터의 시이고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밤으로 잠이 안올 때가 많았다.

정치가 뭔지, 권력이라는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무상한 심정에 빠져 혼자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럴때 그는 혼자서 앞으로 10년,성업의 시대까지를 이끌고 자기도 물러
나야지, 하고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신년초에 마침내 그 생각을 확고한 것으로 굳혀 속에 간직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입밖에 낸 일이 없었는데, 그날 아침 뜻밖에도 도쿠보는
야마요시 지사 앞에 자연스럽게 그말을 꺼냈던 것이다.

신록이 눈부신 5월의 이른 아침인데도 묘하게 오쿠보는 약간 감상어린
기분이었다.

볼일을 마친 야먀요시가 일어나 돌아가려고 하자, "잠간만." 하면서
오쿠보는 그의 한쪽 팔을 붙들었다.

"무슨 선물을 가지고 온 모양이니, 따로 답례를 해야 되지 않겠소,
이리오오." 그를 데리고 자기의 거실인 널찍한 다다미방으로 간 오쿠보는
묵필과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일필휘지를 하는 것이었다.

"위정청명"-그의 좌우명이었다.

통치를 맑고 밝게 하려는 게 그의 신념인 모양이었다.

비록 마누라를 죽인 구로다를 감싸러 덮어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