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경영합리화와 조직활성화를 위해 자문역들에 대한 판공비를
없애기로 하는등 "자문역제도 개선안"을 마련, 오는 3월부터 실시할 예정인
동시에 조기퇴직을 강력 유도하고 있다.

이는 한은집행부와 은행감독원의 각 부서(국)중 최소한 5개이상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과 맞물려 있어 한은 전체가 술렁거리고 있다.

한은이 이처럼 예년에 없던 조직정비에 나선 것은 비대한 조직에 대한
안팎의 따가운 시선때문.

여기에 지난 연말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한 정부측의 강도높은 조직
축소와 인원절감 요구도 한몫하고 있다.

이에따라 빠르면 오는 16일까지 조직개편안을 최종 확정짓고 18일 조기
퇴직신청을 마감, 새조직에 따른 인사를 확정한뒤 3월부터 새출발하겠다는
시간표를 짜고 있다.

일반은행중에서도 지난달 조흥 외환은행이 부서장급을 대폭 줄이는 조직
개편을 단행한데 이어 서울신탁은행등 다른 은행들도 주총이 끝난뒤 과감한
개편을 계획하고 있다.

"한은모델"은 따라서 이들에게도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문역제도 개선이나 조기퇴직유도가 정부의 조직개편과는 달리
"위(임원)는 건드리지 않은채 아래(직원)의 희생만 요구하는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있는만큼 직원들의 적극적인 호응은 받지 못하고 있고 노조의 반발
또한 거세 성과가 제대로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 한은에서 조직개편과 함께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자문역제도의
개선과 적극적인 조기퇴직유도를 통한 인원절감이다.

자문역제도개선은 한마디로 전업알선등을 통해 퇴직을 적극 유도하고
그래도 남을 경우엔 처우수준을 하향조정한다는 것.

심화되는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90년 도입된 자문역제도는 정년
2년전의 직원을 인사부소속으로 발령내 정원외 직원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급여나 판공비등은 자문역으로 발령나기 이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지급했다.

그러나 3월부터는 자문역을 정년이 1년이상 남은 "1년차 자문역"과 정년이
1년미만인 "2년차 자문역"으로 구분, 2년차들은 아예 출근을 하지 않도록
하고 판공비나 차량유지비(월40만원)와 업무수당(월 6만원)도 주지않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1년차의 경우에도 판공비는 주지않을 계획이다.

한 관계자는 "현재 21명의 자문역중 부장급만도 11명으로 전체 부장급의
14.7%"라며 "이 추세로 나가면 3년후엔 자문역이 부장급의 30%가 될 것"
이라고 밝혔다.

자문역이 급증하고 있으나 일반 은행으로의 전출이 예전같지 않은 만큼
"미안하지만 나가달라"는 얘기다.

지난달 19일 발표한 조직퇴직도 결코 수월치는 않다.

여직원의 퇴직대상을 30세로 하는등 전직원의 55%를 대상으로 설정해 놓고
있으나 신청자수는 아직 미미하다.

마감을 10여일 앞두고도 여직원이나 특수직종에서 일부 신청자가 있을뿐
일반직원들은 거의 신청이 없다는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따라서 한은은 최근 전례에 없는 인사담당임원 명의의 "사신"을 각 부서장
에게 보내 전직원들이 회람토록하는등 조기퇴직유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사신의 내용은 "올 3월 정기인사부터 서열위주의 인사를 과감히 지양하고
비효율적인 인력을 최대한 감축하는 방향으로 관리해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
넣지 않으면 않될 어려운 여건에 놓여있는 만큼 냉철한 입장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는 것.

특히 "조직퇴직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니 휴가 출장 파견등으로 시행내용
을 모른채 지나치는 사례가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하는등 한사람이라도 더
퇴직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은 조직의 "슬림화"가 제대로 될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노조나 직원들의 반대도 반대지만 개혁의 칼을 들어야 할 임원들부터
제살을 과감하게 도려내겠다는 의지가 약하다는게 한은 직원들의 시각이다.

한은이 추진하고 있는 "인력정예화 조직활성화 경영합리화"에 임원실도
예외는 아니어야 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육동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