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고가 마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마구 반말로 퍼부어대자, 기리노와
무라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금까지 그처럼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난슈 도노"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두 사람은 바닥에 두 손을 짚고 깊이 머리를
숙였다.

"죄송이고 뭐고 없다구. 내 얼굴에 똥칠을 해도 분수가 있지 그게 뭐야,
도대체. 부하들을 희생시킨 대가로 자기 목숨을 건지다니, 내가 그런 인간
인줄 알았나? 내 목숨을 버리는 대신 부하들이 살 수 있다면 그 길은 내가
쾌히 택하겠지만 말이야"

"난슈 도노,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뭐야?"

"난슈 도노는 국가에 공로가 지대한 분이고, 또 앞으로도 이 나라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분이시니까, 그렇게라도 해서 구명하고 싶었을뿐
입니다.

이번 반란도 실은 저희들의 소행이지, 난슈 도노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죄송한 마음에 그렇게라도 해보려고 했던 것 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기리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난슈 도노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른 뜻은 전혀 없었으니 저희들의 마음을 헤아리시어 노여움을 풀어
주십시오" 무라다도 곧 울음을 쏟을 듯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음-" 두 부하의 간절한 말에 분노가 차츰 가시고, 사이고는 콧 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참으로 착잡하면서도 가슴이 뜨끈해지고, 묘하게 슬프기도 하였다.

"아-" 사이고의 남달리 큰 두 눈에도 핑 눈물이 어렸다.

그것을 감추려는듯 얼른 고개를 뒤로 젖혀 토굴의 천장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아 버렸다.

토굴 밖으로는 가을바람이 마치 패군의 장(장)과 그 심복 부하의 처참
하면서도 눈물겨운 심정을 알기라도 하는 듯 유난히 쓸쓸하고 허전하게
불어가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 요란한 포성이 가고시마의 하늘을 뒤흔들었다.

항구에 정박해 있던 수척의 정부군 군함에서 시로야마를 향해 일제히
함포사격을 개시한 것이었다.

총공격의 신호였다.

곧 요란한 총성과 함성이 울리며 산을 포위하고 있던 육군부대도 공격을
시작하였다.

사이고의 마지막 3백여명의 부하들 가운데 절반 가량만이 총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결사적으로 응사를 하며 저항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