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독일이 2차세계대전중 유럽의 각국 영토를 침공 점령한 뒤 세운
강제수용소는 무려 21곳이나 된다.

독일에는 브헨바르트 닷하우 등 9곳, 폴란드에는 아우슈비츠 비르게누프
마이라네크 트레브링거등 7곳, 소련에는 2곳,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체코슬로바키아에는 각 1곳이 있었다.

그것들 가운데서도 가장 악명을 떨친 수용소는 아우슈비츠였다.

그곳에서 가스실학살 실험이 처음 행해진데다 그로인해 엄청난 인명이
대량으로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1940년5월 아우슈비츠수용소 건설과 더불어 소장으로 부임한 루돌프
헤스는 폴란드인정치범 소련군포로 유태인 등 수용자들을 2만명이나
총살하면서 총살행이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처형자들이 처형되기 직전에
나치에 저항하는 구호를 외칠때 친위대원들의 사기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 나머지 가스처형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는 41년9월 마침내 오약수용자 250명과 소련포로 600명을 치크론 라드
독가스로 집단 살해하는 첫 실험을 했다.

독일이 패전한 뒤 헤스가 진범으로서 뉴른베르크재판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이전 방법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처형된 사람의 숫자는
엄청나다.

"나는 1943년12월1일까지 아우슈비츠에서 적어도 250만명을 독가스형
이나 화형에 처했다.

그밖에 50만여명이 굶주림과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그것을 합하면
사망자는 300만명에 이른다"

45년1월27일 아우슈비츠수용소를 해방시켰던 소련군의 군사발표로는
희생자는 무려 400만명이나 된다.

그 숫자는 아우슈비츠수용소보다 10배나 크고 또 그곳과 이웃해 있는
비르케누프수용소의 희생자를 포함시킨 것이었다.

비르케누프수용소입구에 세워진 국제위령탑이 400만개의 돌을 쌓아
세워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로 미루어 21개의 수용소에서 대량학살된 희생자의 수는 800만~
1,200만명으로 추정되어 왔다.

나치전범 재판정에서 영국인 검사가 "1,200만명의 살인! 이 살인으로
유럽의 유태인중 3분의 2 이상이 살해당했다.

살인자 자신들의 계산으로도 600만명을 헤아리고 있다"고 논고한 것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지난92년 폴란드정부의 특별위원회는
종전 당시 소련군이 가져간 아우슈비츠관련문서를 되돌려 받아 재검토한
끝에 희생자의 숫자를 150만명으로 정정 발표한 바 있다.

희생자의 숫자가 어떻든간에 천인공노할 나치독일의 만행은 아우슈비츠
해방 50돌을 맞는 지금에도 상처를 아물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