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새벽에 사야마 고개를 넘어 가고시마 시내에 진입한 사이고의
마지막 군사들은 사학교에 본영을 설치하고 있는 정부군의 별동신선
여단을 기습했다.

아직 잠들어 있는 정부군 병사들을 대검으로 무 자르듯 마구 해치워
댔는데, 그러는 동안 사이고는 기리노와 무라다등 심복들의 호위를
받으며 시로야마로 들어갔다.

시로야마는 가고시마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었다.

그 산의 한쪽 후미진 이와사키 계곡에 동굴을 파서 그 곳을 사이고의
마지막 지휘소겸 거처로 삼았다.

관군의 포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너댓사람이 들어앉아 얘기를 나눌 수가 있고, 두어사람이 누워 잠잘수
있을 정도의 굴이었다.

그 속에 몸집이 남달리 크고 뚱뚱한 사이고가 마치 낯바닥이 허연
곰처럼 들어앉았던 것이다.

3백여명의 마지막 군사를 거느리고 그 어두컴컴한 토굴을 본영이랍시고
들어앉게 된 사이고는 가슴 속에 만감이 교차하고, 단장의 비애가 뱃속을
휘저어 대는 걸 어쩌지 못했다.

가장 괴로운 것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는 일이었다.

생각했던대로 잘 도쿄에 진격해서 그 곳을 손아귀에 넣어 다시 천하를
거머쥐게 되었더라면 "이기면 관군"이라는 말과 같이 재차 자기가
천황을 빼앗아 받들어서 충신이 되었을 터인데, 하늘이 이렇게 자기를
버릴 줄이야, 정말 원통하고 절통한 노릇이었다.

지금쯤 오쿠보는 만면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목구멍에서 생피가 솟구칠 지경이었다.

어느날 밤 동굴 안에 앉아서 사이고는 기리노와 무라다에게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 오쿠보가 좋아할 일을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구려"
사이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속으로는 견딜수 없을 정도로 그에 대한 증오를 느끼면서도 결코
그 감정을 입밖에 내어 말한 적은 없었다.

마지막이 가까워지자 그의 그런 큰 그릇에 금이 가서 감정의 물이
샌다고나 할까.

"난슈 도노, 생각하면 피를 토할 노릇이지요.

그러나 염려 마십시오. 결코 오쿠보가 제 명대로 살지는 못할
것이니까요" 기리노의 말이었다.

그 말을 받아 무라다도 거침없이 말했다.

"맞습니다. 난슈 도노, 우리는 여기서 끝납니다만, 아직 살아있는
우리의 동지들이 전국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무력으로는 안되지요.

우리가 못해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반드시 난슈 도노의 한을 풀어 드릴 것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