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과세를 구정으로 바꾸었다가 요즘 되돌아 오는 사람들이 있다.

차례는 짧게 노는 신정에 지내고 길어진 구정휴일을 레포츠로 활용하려는
심사에서다.

설이란 새해의 머릿날이니 놀고 시시덕거림 이상으로 보람찬 한해를
다짐하는 의미가 담겨야 제격이다.

또 당연히 달력의 첫장 첫날이 설날이지, 1월도 되다 2월도 되다, 왔다
갔다 해서는 설의 참뜻에서 벌어진다.

이땅에서 신.구정 다름의 역사는 길고 얄궂다.

백년이 넘은 갑오경장때 고종칙령으로 태양력 사용이 권장되었다.

다만 신정과세 생활화를 일찍 정착시킨 일본인들이 들어와 신정을 쇠며
권장도 했기 때문에 얼토당토 않은 일본설이란 낙인이 찍혔을 뿐이다.

해방이후 역대정부도 구정의 공휴일 지정만은 용케 피했다.

출근전 차례참배의 불편을 느낀 공무원 직장인 가운데 양력과세로 옮겨가는
사람이 늘어갔다.

정부는 산업화로 직장인구가 증가하자 하루 신정휴무를 이틀, 사흘로
연장하며 단일과세를 추구했다.

도시의 양력과세 비율은 80년대초 30%를 육박했다.

관상대에 물어서 조상의 기일까지 양력으로 고쳐 지내는 적극파도 있었다.

출생신고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신세대들의 생일이 양력으로 차려진 것은
오래다.

따져 보자.

수십년 일관된 정부시책에 추종한 국민이 소수라고 해서 중도포기한다면
정부가 하는 말을 믿고 따르겠는가.

더구나 그 소수는 다수를 향해 해마다 자라지 않았던가.

그냥 두었더라면 이제쯤 과반은 됐을텐데 선거 승리라는 정치논리로 그
공든 탑을 허물다니 그 무슨 무철학인가.

3공때도 끈덕진 구정 휴무론이 있었지만 경제논리로 막았다.

공장휴무가 길어지면 수출이 준다는 반대였다.

그 앞장을 선 이가 남다른 설득력으로 10년을 관에 봉직한 남덕우씨였다.

당시 대통령은 그의 손을 들어 줄만큼 현명했다.

경제논리 말고는 양력과세의 정당성이 없는가.

있다.

생산위축이 문제라면 1월1일의 휴일지정 폐지만으로 벌충할수 있다.

이토록 양력과세후퇴를 지금까지 통탄하는 이유는 80년대초 당시 정권이
선거승리와 이상을 맞바꿔먹은 그 근시성이 미워서다.

정부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좋아만하면 덮어놓고 따라가는 것이 민주정부인가.

그건 자기기만이다.

자격있는 정부라면 비록 인기가 없는 일이라도 나라를 위해 옳으면 포기치
말고 밀어가는 이상지향이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이끄는 정치라 할수 있다.

국민의 7~8할이 구정과세를 하니까 선거에 표 더 따겠다는 흑심하나로
1세기에 걸쳐 힘들여 추구해온 국가목표인지 아닌지 알바 없다고 홱 돌아선
당시 지도부 사람들의 발상이 슬프다.

이상이나 합리나 정의가 반드시 다수편에 서는것은 아니다.

민중의 관습적 저항에 불구하고 나라가 확신을 가지고 큰 일을 관철해낸
사례는 동서에 많다.

안으로도 단발령 종두법 과부개가등 그 예가 많다.

목숨 건 반대에도 굴치 않고 성공시킨 단발령을 지금 누가 욕할건가.

소를 못잡아 먹게해 식량난을 가중시키고 쥐를 못잡게 해 질병을 전염
시키는 나라가 있다.

그런 교리에 손 못대는 정부가 민의존중이라고 칭찬을 들어야 할까.

원시 수렵문명이 농업문명으로 발전한데에는 달력을 만들어낸 천문학의
힘이 크다.

3백65일 5시간48분46초라는 지구 공전시간에 근거한 태양력과 달의 지구
회전을 기준한 태음력은 모두 위대한 기여를 했다.

양자의 장단을 여기 논할 필요는 안느낀다.

다만 한가지만 묻자.

이제부터 양력대신 아주 음력을 쓰면 어떠냐고.

여기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줄창 쓰는 달력의 첫날을 설로 삼은 역대의 일관된 시책을
인기가 없다고 되돌아 서는 작태가 무언가.

더러는 각자 마음대로 골라 쇠면 된다든가, 공적인 행사는 양력으로 하고
가정의 과세는 음력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을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에 정월 초하루, 설날이 둘 있어선 좋지 않다.

공사간 별개과세가 되거나 이중 문화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정부 단체 기업들이 결산과 계획과 예산등 모든 업무를 양력기준으로 한다.

특수 종교국을 빼면 모든 나라가 그런데 우리만 여기서 뛰쳐 나올수
있는가.

대통령이 공적 신년사는 1월1일에 하고 대국민 축하 신년사를 몇주뒤
음력설날에 또 낼건가.

직장에서 새해 일 잘하자는 다짐행사를 1월1일 하고 식구끼리 세배하며
"새해 소원성취 해라"는 덕담은 2월 며칠날 따로 할 건가.

아니면 음력에 할테니까 1월1일은 완전한 평일처럼 넘길건가.

벌써 한두해 텔레비전에서 남녀 아나운서가 한복을 차려입고 양력.음력설에
세배를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고마워하기보다 웃긴다고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세계화할수록 민족 고유의 미풍을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옳다.

그러나 민속보전을 내세워 음력과세 회귀를 고집함은 과잉방어다.

민속절로 그대로 두다가 세대가 바뀌면서 양력설로 통일됨을 기다렸어야
옳았다.

중국이 음력과세를 하는줄 알지만 아니다.

음력원단은 말그대로 봄의 명절인 춘절이라 하여 즐기고 생활에선 양력을
쓴다.

명치초 짧은 기간내의 태양력 정착을 상기하면 고베 지진에서 세계에
보여준 일본국민의 수준은 이상한게 아니다.

1세기 후퇴를 만회하려면 근년 한술 더뜬 "설"칭호부터 철회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