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완규 <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 ]]]

*** 약력/저서 ***

<>28년생
<>서울대 생물학과 졸업
<>서울대 동물학과 교수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과총회장
<>교육개혁심의위원
<>서울대총장
<>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
<>대학교육협의회장
<>과학재단이사장
<>교육부장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현)
<>한국생물산업협회장(현)
<>저서 : ''발생생물학'' ''동물비교해부학''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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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 있는 유엔대학부설 신기술연구소가 과학
기술관련 경제학으로 이름난 세계적 학자 15명을 초청하여 ''개발도상국에
있어서의 과학기술진흥정책과 그 전망''이라는 주제로 3일간 학술행사를
가졌다.

그들은 한국과 대만을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의 예로 들었다.

나는 그들의 평가에 이의가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여러분들이 한국을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라고 하지만 몇가지 점에
있어서는 동의할수 없다. 한국이 기적을 이룬 것은 지난 88년까지의 일이다.
1948년 해방이후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86년이후
4년동안만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을뿐 늘 적자에 허덕여왔다. 88년 110억
달러의 흑자를 정점으로 무역수지가 다시 악화되기 시작, 91년에는 100억
달러에 가까운 적자를 냈으며 그 뒤로는 좀체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5,6년사이 무역수지가 2백억달러의 폭으로 기복을 보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같은 기복을 이룬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동안 우리가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전적으로 우리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원유값 달러값, 그리고 세계금리가 싼 것등 국제여건이 우리에게 유리했고
외국으로부터 기술을 쉽게 도입할수 있었던데다 노임도 쌌다.

이 덕택으로 경제가 급성장하여 88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폭의 흑자를
낼수 있었다.

그러나 2,3년후에는 또 기록적인 적자를 보여준 것이다.

당시의 정책수행자들은 우리의 그 같은 경이로운 경제성장이 남의 힘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그에 대응할 적절한 정책을 세웠어야 옳았다.

그러나 정부는 외화유입에 의한 인플레를 우려하여 관광여행 장려, 외화
보유상한액의 인상, 해외부동산투자허용등의 정책을 폈다.

그 결과 국민들은 갑자기 부자가 된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곧 이어서 국내외 사정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바뀌었다.

시장개방압력이 드세졌고 선진국의 기술보호장벽이 높아졌으며 더 나아가
물질특허제도와 지소권을 수용할수 밖에 없게 되었다.

또 민주화 과정에서 노임은 2배, 3배로 뛰어올라 결국 제조업은 국제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이제는 한국이 "아시아 4마리 용"권에서 밀려났고 7,8번째 자리를 지키기
조차도 힘겹게 되었다.

만일 한창 호황일때 애써 벌어들인 외화를 과학기술교육과 연구에 투자,
그 능력을 키웠다면 오늘과 같은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대만에도 우리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있었지만 그같은 장벽을 거뜬히
뛰어 넘어 무역수지 흑자가 누적되었고 외화보유고만도 8백억달러가 된다.

1천5백만 인구의 대만이 인구11억인 중국대륙과 당당히 맞서 대결할수
있는 힘도 갖게 되었다.

대만이 그같은 힘을 갖게 된것은 정부가 과학기술진흥을 위하여 과감한
투자를 하고 연구인력양성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수가 서울대학교의 3분의2인 대만대학이 서울대학교의 3배에 달하는
예산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대만이 한국을 앞지를수 있게된 원인을 알수
있다.

결국 개발도상국 가운데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는 대만이고 한국은 결코
성공한 나라가 될수 없다"

이렇게 설명한뒤 그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비쳐지게 할수
없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비관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새 정부가 들어선뒤 국제경쟁력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한
신경제정책을 수립하였고 모든 국민들이 과학기술육성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으나 끝내는 한국이 아시아 4마리 용의 자리에 다시
오를 것이다"라고.

세계 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그렇게 낙관만 할수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수 없다.

요즘 갑자기 "세계화"가 우리나라 국정의 중심핵처럼 되고 있다.

세계화를 처음으로 제시한 정치권의 정의가 무엇이든 세계제일 세계최고를
노리는 것도 그 실의속에 포함되리라 믿는다.

미국이나 호주처럼 천연자원이 풍족한 나라들은 느긋할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는 인력을 결집해서 세계최고요 세계제일의 물건을 만들어
내놓지 않고서는 WTO시대를 맞아 더 이상 살아남을수 없다.

세계화정책이 이런 점까지를 의식하여 책정되었다면 그것은 옳은 방향이다.

그같은 정책을 구현시키기 위하여 몇가지 고치거나 해야할 일이 있다.

첫째 우리는 자체의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 그 수준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동안은 자신이나 연구소의 연구결과, 혹은 개발결과를 과장해서 발표
하거나 홍보하는 예가 있었다.

특히 공인되지 않은 연구결과를 언론을 통해 세계제일 최초등으로 소개함
으로써 동료들로부터 빈축을 사는 경우가 빈번했다.

많은 연구자들은 연구비제공자의 압력을 의식하거나 공명심에 사로잡혀서
결과를 침소봉대하여 발표하곤 했다.

또 연구기관들은 그결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과장발표하여 국민홍보 목적에
이용하기도 했다.

그같은 과장홍보는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이 오판하게 하고 국제적인 신뢰를
잃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제는 각 분야의 연구인력층이 어느정도 두터워졌고 연구와 관련된 정보를
쉽게 얻을수 있어서 과장된 포장은 국내외 전문가들의 웃음거리가 될뿐이다.

나라 전체로서도 각 전문분야의 수준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그 분야의
국제적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과학기술진흥
정책을 마련해야 할것이다.

<<< 계 속 ...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