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남북한관계가 어느정도 개선되는가 하는 것은 북-미관계의 진전이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해 10월의 제네바합의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일관성있게 취하고 남북대화에 즉각 착수할 것에
합의하고 있는 때문이다.

북한은 이같은 합의내용에 따라 남북대화를 착수해야 함에도 불구, 조평통
서기국보도및 각종 선전매체들을 동원해 김영삼대통령과 한국정부가 한반도
긴장완화에 역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제네바합의와 상반되는 조치를
계속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정책이 계속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정권교체기에 있는 북한으로서는 북-미 합의가 김정일의 긍정적인
지도자상을 부각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이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같은 상황은 비정부차원에서 남한기업들의 대북진출에 협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북한당국의 태도에서도 읽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궁극적으로 북한당국이 남한과의 대화재개및 관계개선에 전향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열쇠는 김정일체제의 북한이 얼마나 빨리 안정되느냐 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정치적 안정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대남관계개선및 대외
개방이라는 정책적 목표가 대내적 권력기반강화라는 정책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경우에는 반대로 대외개방과 남북대화를 비롯한 대서방관계개선이
부분적으로나마 봉쇄당하는 경우도 상정해 볼수 있다.

여러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남북대화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의
개최는 가능할 것인가.

김일성의 생존시이기는 하지만 남북한당국이 이미 이를 합의했던만큼 그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김대통령도 지속적으로 정상회담의 수용의사를 표명한만큼 북한의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관계개선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핵문제가 일단 제네바합의로
그 비중이 약화되고 있고 북한이 필요로 하는 대서방관계개선과 국제사회
에서의 활동증대에 남한의 지원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정상회담
개최의 필요성도 시간이 감에 따라 점차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남북대화의 전개에 있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특사교환
과 같은 특정한 방식의 대화에는 응해 오겠지만 고위급회담과 핵통제공동위
등 부속기구를 통한 대화개최에는 부정적일 것이라는 점이다.

특사교환과 같은 것은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이 존재하는 한 절차적 이유
에서 타당성이 있고 북한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남북한간 대화의 제도화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특정분야의 비정기적 의견교환이라고 할 수 있는
''특사''쪽을 선호할 것이 확실한 때문이다.

이같은 논거는 북한내부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올해 급격하게 호전될
것으로 예상할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에서도 분명하다.

그러나 상설대화기구라고 할 수 있는 고위급회담과 부속기구를 통한 대화는
북한에 충분한 이익을 보장하기 어려움은 물론 대화에 이어지는 어떤 부담을
지기 싫다는 정치적 이유에서도 기피할 것이 확실시된다.

단적인 예로 북한은 93,94년의 특사교환을 제의하는 과정에서 고위급회담을
포함한 기존의 대화채널에 대해 정당성과 진전상황을 부인하는 자세를 견지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한편 올해 예상되는 남북한관계의 특징은 비정치적 접촉의 활성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내달에 뉴욕에서 코리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정식 출범되면 남북한간
실무적이고 전문적인 분야의 접촉이 증대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또한 북한체제의 대내적 결속의 필요성을 감안, 남한에 대한
공산화전략자체를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 활실한만큼 이 때 나타나는
남북한간 갈등이 남한사회의 안보우려를 충분히 불식시키는 수준까지는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말해 북한은 남북관계진전의 속도와 폭을 체제유지에 위협이 되지
않는 제한적 범위내에서 선택적으로 조절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남북한이
본격적인 교류와 협력의 단계에 진입하기에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이홍구국무총리도 강조했듯이 남북한관계가 어떻게 변화되느냐 하는 키는
북한이 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따라 정부의 정책은 북한당국의 정책의지와 북-미관계의 변화 등 각종
요인에 따라 가변적일수 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올해 대북정책의 기본방향도 그들이 경제난에서 벗어나고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북한의 체제변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설정되는 한편 북한내 개혁지향적 세력의 입지를 강화해 줄 수 있도록 마련
되어야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양승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