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뜬 오쿠보는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정말 골칫거리군. 또 한번 큰 내전을 치러야 된단 말인가"
막부를 타도할 때의 무진전쟁 못지않은 큰 전란을 또 치러야 될 것만
같아 난감한 심정이었다.
가와지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치를 전쟁이면 질질 끌것 없이 일찌감치 치러버리는 게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가 먼저 시작한다 그거요?"
"시작하되 처음부터 정면으로 도발할게 아니라, 그들을 자극해서
그쪽이 먼저 일을 일으키도록 하는 거죠. 그래야 개전을 할 명분이
서지 않겠습니까"
"음-" 오쿠보는 괴로웠다.
고향인 가고시마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야 하다니,더구나 그쪽
우두머리는 사이고가 아닌가.
그는 불쑥 물었다.
"전쟁을 피할 방도는 없겠소?"
"글쎄요."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지 피했으면 좋겠는데."
이번에는 가와지가 좀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조심스런 눈길로
오쿠보를 바라보며 어조를 약간 낮추어 말했다.
"피해질지 어떨지 결과는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취해볼 한가지
방도는 있지요"
"그게 뭐요?" 오쿠보의 눈이 빛났다.
그 날카로운 시선을 비키듯 가와지는 살짝 고개를 떨구며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
그리고 입을 뗐다.
"각하, 가고시마의 사태가 누구 탓입니까?" 도리어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음성이 약간 떨리는 듯했다.
오쿠보는 대답이 없었다. 가만히 가와지를 바라보는 두 눈빛이 좀
야릇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이미 그는 가와지가 말하려는 뜻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가와지는 오쿠보의 그런 야릇한 눈빛을 보자,입을 다물어 버렸다.
두려움에 굳어진 그런 표정이었다.
"그래서? 다음 말을 해보오" "."
"왜 말이 없소? 경시청장, 말을 하다가 갑자기 벙어리가 됐나요?"
그래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자,오쿠보는 그만, "허허허." 웃어 버렸다.
웃고나서 그는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무슨 수를 쓰든지 전쟁을 피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