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한햇동안 메이커는 메이커대로 열심히 밀어내고 전문점은 전문점대로
깎아주기경쟁을 벌인결과 남은 것은 제조-유통업체를 막론, 수지악화와
외제선호현상을 더욱 부추긴것뿐이다.

중하위권업체로 갈수록 실적부진과 이익감소로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연초에 세운 목표미달업체도 속출하고 있다.

태평양이 목표매출액(샴푸 린스 부가세 포함) 5천3백40억원에 미달하는
5천1백50억원, 럭키가 3천7백억원을 밑도는 3천6백억원, 한국화장품은 작년
매출액에 못미치는 1천1백66억원, 쥬리아가 목표8백50억원의 96%수준인
8백2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된 원인에 대한 책임공방도 치열하다.

우선 선두업체인 태평양의 변은 이렇다.

"가격질서문란을 더이상 방관할수 없어 지난 7월부턴 매출감소를 무릎쓰고
가격질서잡기에 나선바 있으나 아무도 행동을 같이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틈을 이용, 타사의 밀어내기가 더 심해졌다"는 얘기다.

한국화장품을 비롯, 중하위권업체들의 반박은 더욱 노골적이다.

"상반기에 마음껏 밀어제껴놓고 비수기인 7월서부터 가격질서잡자고
나선다는게 말이 되느냐. 태평양은 업계의 맏형격인데 앞뒤가 맞지않는
행동을 보이니 누가 따르겠는가"

이들 업체들은 "태평양 럭키등이 고성장정책을 계속하는한 화장품업계의
가격질서가 바로선다는 것은 허망한 꿈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하지만 현상황에 대한 인식과 문제점에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한마디로 "갈데까지 거의 다 갔다"는 것이다.

태평양의 영업 총사령탑인 손이수전무는 "장업계의 현 경쟁상황은 마치
교통대란과 비슷한 양상이다. 조금 더 막히면 결국 자동차를 안가지고 다닐
것"이라고 진단한다.

내실위주로 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이다.

가격의 난맥상이 낳는 가장 큰 문제는 영세한 도소매점의 폐점으로 애써
가꿔놓은 "풀뿌리유통망"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데 업계 의견이 일치한다.

명동지역 코너점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대리점사장인 P씨는 "제조업체들
의 과당경쟁과 인건비상승, 코너점의 무자료선호로 인한 세금부담등으로
대리점마진이 15%밑으로 뚝 떨어진 상태"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럭키의 장광식영업이사는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때가 이미 지났다.
이웃한 코너점들이 하나둘 사라지면 박수칠데는 외국화장품사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올 1-9월까지 샤넬 에스티로더 크리스챤디올 랑콤등 외국유명브랜드
9개사가 서울과 지방 1백1개 백화점매장에서 벌어들인 돈은 3백38억원,
점포당 매출액이 33억4천만원을 기록, 국내1위업체 태평양의 점당매출액
36억3천만원과 대등한 수준을 이루고 있다.

이들 외국사는 올연말까진 4백50억원 매출이 무난, 지난해 2백61억원보다
72%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96년부터 시장개방으로 소매점영업까지 외국사가 직접 하게 된다는걸 감안
하면 국내화장품의 경쟁력은 벼랑끝으로 몰린 셈이다.

"공멸의 늪"으로 빠지지 않기 위한 처방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그 우선순위나 비중이 업체별 이해에 따라 다르다는 것뿐이다.

양사합해 시장점유율이 절반가까운 랭킹 1,2위 업체는 무자료거래및 불법
중간도매상 척결에 무게중심을 두고 중하위권업체는 대메이커의 밀어내기
자제를 해답으로 제시한다.

지난주 있었던 화장품협회이사회에선 모처럼 바람직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대리점에 덤 얹어주기를 없애자"는 자정노력에 동참키로 각사대표들이
굳게 합의한 것이다.

이자리에선 또 현행 "권장소비자가"제도의 문제점에 관한 연구 검토를
공신력있는 기관에 의뢰하는 방안이 처음으로 제기되는등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고민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런 진지한 분위기가 영업현장으로 연결될는지 아직은 미지수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