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은 늘어나는 문화영역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 한해였다.

문민정부 둘째해를 맞아 문화정책의 기조는 외관상 화려한 모습을
보였다.

새해벽두 구총독부건물인 국립중앙박물관의 해체와 신축계획에 이어
의욕적인 국악의해 추진안이 발표됐다.

독서새물결운동추진위원회가 구성됐는가 하면,"영상기본법"등 각종
법령의 연내 제정.공포가 예고됐다.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문화정책개발원등 굵직한 단체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거창한 시작과는 달리 결과는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문화개방시대를 맞아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래문화에 대응하기위한 진지한
논의가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물론 우리문화의 새로운 방향이나 비젼도
제시되지 못했다.

문화정책의 부재는 우선 새해에 개정하겠다고 발표한 문화체육부
기본법령의 답보에서 찾을 수 있다.

"영상진흥법"이 부처간의 견해차이로 영상진흥기본법수준에서 머문채
올해를 넘기고 있고 "음반및 비디오에 관한법률","문예진흥법"의
개정도 내년으로 미뤄졌다.

문화정책의 방향도 뚜렷이 제시되지 못했다.

일제의 잔재인 국립중앙박물관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그 사업이 어떻게 진척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문화개방문제도 연초 올해안에 어떤 식으로든 방침을 분명히
하겠다고 한 것과 달리 어정쩡한 상태로 지나갔다.

오히려 박지원의원(민주당)이 국회의 국정감사중 정부에서 마련했다는
일본문화개방대책안을 발표하자 문체부측이 정부안이 아니라 용역보고서
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하는등 한바탕 소동만 벌였다.

따라서 이 문제 또한 개방방침이 확정된 채 시일만 늦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만 남긴채 광복50주년해인 95년으로 떠넘겨지게 됐다.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나 문화정책개발원등도 설립됐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할 사업을 내놓은 것이 없다.

그러나 문화체육부안에 문화산업국이 신설돼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문화의 산업적 측면에 대한 인식제고및 지원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나
영상산업발전민간협의회가 발족돼 영상산업 발전및 지원의 기틀을
세운 것은 94년 문화정책상의 중요한 성과로 꼽힌다.

문화의 영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문화예술은 이제 더이상 일반의 삶과 유리된 일부특수층의 향유물이
아니다.

뉴미디어 멀티미디어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서면서 문화예술산업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21세기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시대에 자국문화를 지키는 일 또한 각국의 최대이슈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만큼 문화정책의 중요성 또한 커지고 있다.

문화정책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부는 전시효과에 치우친 정책이나
행정이 아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을 펴야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