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통장을 분실했다.

다행히 통장에 신고된 도장(인감)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예금이 인출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하고 안심했다.

그러나 정작 은행에 가보니 돈이 인출된 상태였다.

이 경우 은행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면 돈을 찾을수 있을까.

예금청구서에 찍은 도장과 통장에 신고된 인감이 확실히 다른데도
은행이 돈을 내주었다면 이는 명백한 은행의 과실이다.

따라서 이 경우엔 당연히 은행에서 예금주에게 인출된 돈을 전액
물어줘야만 한다.

그러나 청구서상의 도장과 통장인감이 같은 것으로 볼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고 비밀번호가 일치하는 경우엔 은행은 인출된 금액의 일부만을
돌려주면 된다는게 은행감독원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판결이다.

예금주가 통장보관을 제대로 하지 못한 과실이 더 크다고 본 때문이다.

유치원교사인 박모씨(29.여)는 지난해 8월6일 자유저축예금통장이
없어졌다는걸 알았다.

통장인감은 제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그날 곧바로 은행에 분실신고를 했다.

그러나 예금중 8백만원이 두지점에서 이미 인출된 상태였다.

박씨는 당연히 은행이 인감대조업무를 소홀히했다고 판단,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대해 은행측은 예금이 인출된 두 지점의 직원들이 청구서의
도장과 통장인감을 두세차례 주의를 기울여 대조해본 결과 서로
같다는 판단을 내렸으며 비밀번호도 일치해 돈을 내준만큼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은행감독원은 이 분쟁에 대해 은행측은 인출된 돈의 20%인 1백60만원만
박씨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은감원은 은행측이 인감대조에 대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은
인정되지만 2개지점직원들이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위조인감이 유사한
점등을 들어 일부만을 과실로 인정한 것이다.

은감원은 범인이 비밀번호까지 정확히 알 정도로 통장관리를 소홀히
한 박씨의 과실이 더 크다고 밝혔다.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