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도시전체가 괜스레 들뜬다.

그러나 주위가 떠들썩할수록 내면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지는 법.

군중속의 고독이 절감되는 계절, 연극계에서는 까닭모를 불안감과 고독에
시달리는 30,40대 샐러리맨을 위한 작품 2편이 조용히 관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극단 반도의 "제비는 나폴레옹꼬냑을 마시지 않는다"와 극단 여인극장의
"세상은 남자가 정부를 원한다"가 월급쟁이를 위한 연말화제작.

두 작품 모두 사회조직과 권력에 갇힌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다양한 음악과 화려한 의상도 극의 재미를 더한다.

31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무대에 오르는 "제비는 나폴레옹꼬냑을
마시지 않는다"는 독일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 "콘트라베이스"를
각색한 것으로 국내초연작.

시립교향악단 콘트라베이스연주가의 독백을 통해 월급쟁이예술가의 고뇌와
자신보다 조건이 좋은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절망감을 그리고 있다.

84년 발표돼 무명의 쥐스킨트를 유명작가로 끌어올린 이 작품은 35살
노총각 콘트라베이스주자가 연습실에서 관객을 향해 자신의 누추한 삶과
그 누추함을 떨쳐버릴수 없는 스스로의 소심함에 대해 얘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이 연극에서 오케스트라는 조직사회,지휘자,악장,제1바이올린등에 비해
서열이 떨어지는 콘트라베이스는 주변인생을 사는 소시민을 의미한다.

대사 사이사이에 흐르는 브람스 모차르트 바그너 슈베르트의 음악은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요소.

14일까지 문예회관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세상은 남자가 정부를 원한다"는
권력을 가진 영국 귀부인과 야심만만한 30대 남자의 힘겨루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사회조직을 뚫고 이리저리 출세해 보려는 성실한 샐러리맨이 결국은 권력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좌절한다는 내용.

힘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사회상을 늙은 귀부인과 30대 남자의 관계속에
반영, 일정한 선을 넘을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무게운 주제를 재치있고 익살 넘치는 대사로 압축, 줄거리 전개가 흥미롭고
오랜만에 주연으로 무대에 서는 김금지씨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