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지역을 지적재산권 보호의 사각지대로
간주하는 성향이 짙다.

특히 컴퓨터용 소프트웨어부문에서는 불법복제를 막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감시를 게을리 않고 있으며 복제행위가 위험수위를 넘었다
싶으면 현지 당국과 협조해 "시범케이스"로 철퇴를 가하기도 한다.

러시아도 이제 미기업들의 이같은 블랙리스트에 포함됐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 로터스등 미소프트웨어업체들의 복제행위에
대한 투망식 단속모습을 볼수 있을 듯하다.

미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러시아 시장에서의 해적행위를 더이상 묵인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두가지정도로 요약된다.

하나는 러시아시장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같은 불법복제 행위가 고질병화하기 전에 미리 손을 쓰자는
것이다.

러시아 소프트웨어시장의 형성 역사는 아주 짧다.

불과 3년전만해도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어 이시장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방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지적재산권을 보호해
주는 장치가 없는 러시아시장에 들어가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구소련 붕괴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러시아에서도 컴퓨터구입붐이 일어나 한달에 8만대의 컴퓨터가 팔리는등
컴퓨터시장 성장률이 연간 30~50%에 달했다.

92년에는 지적재산권보호 법률이 문서상으로나마 마련됐다.

최근 러시아 소프트웨어시장은 성장세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한예로 옛소련의 정보기관이었던 KGB본부자리 근처에 들어선 소프트웨어
상점인 비블리오글로버스에서는 로터스 1-2-3,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볼랜드
패러독스등이 진열돼 팔리고 있는데 지난 6월이후 지금까지 2만달러어치
넘게 팔렸다.

또 마이크로 소프트 러시아사무소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천%
가까이 매출을 늘렸다.

러시아 소프트웨어업계 전문가들은 러시아 기업들이 한달 평균 1백만달러가
넘는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러시아 소프트웨어시장은 하지만 불법복제 행위가 아니라면 이보다는 훨씬
클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사무용소프트웨어협회(BSA)는 지난해 러시아내 컴퓨터에서 이용된
소프트웨어 가운데 98%는 불법복제품이었으며 이로 인한 미업계의 피해액이
7천5백만달러에 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해적판이 판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게 서방
기업들만은 아니다.

러시아 최대 소프트웨어업체인 1C사와 패러그래프-인터페이스사등 러시아
기업들도 불법복제행위 근절책 마련에 적극적이다.

여기에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에 대한 러시아 정부와 일반기업들의 시각도
달라지고 있어 정품 소프트웨어 구입추세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정품소프트웨어 구입비중이 미국 기업들이 기대하는
수준에는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제까지 러시아내에서의 소프트웨어가격을 싸게 책정, 정품구입을
촉진하는 유화책으로 일관해온 미국 기업들이 강경책을 병행해야될 시기가
됐다고 판단한 이상 멀지않아 러시아 소프트웨어시장에서 불법복제행위
단속으로 인한 한바탕 소통이 벌어질 전망이다.

러시아 불법복제 금지법에 따라 4백달러가량의 벌금을 물게될 첫 "희생자"
가 누가 될지 관심거리다.

< 김현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