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한담] 한국,러 기술도입 때놓쳐 안타까워..장학수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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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교포과학자 장학수박사(62).
독립투사 가정의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16세의 어린나이에 38선을 넘어
북한사회의 일원이 됐으나 숨막힐 것 같은 북한체제에 항거, 두만강을 건너
구사일생의 소련망명을 택했다.
소련에서 그 어렵다는 공학박사 학위를 따고 32건의 발명특허를 얻는등
일가를 이룬 그는 한때나마 정상급 과학자로서 영예의 삶을 누린다.
망국의 수난속에서 태어나 분단과 이산의 비애를 겪으며 냉전시대를 몸으로
부딪쳐 살아온 그의 일생은 한 지성인의 기구한 영욕의 삶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형제들은 지금도 러시아 일본 한국 등 4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공산주의를 동경하여 중학교 2학년의 철부지로 월북한 이후 한시도 잊지
못했던 고국땅을 밟은 것은 42년만의 일로 지난 90년.
그때 그의 망막속에는 "이북에서라도 학업을 계속하라"며 등을 떠밀던
어머니의 환영뿐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조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온몸을 바치고
있다.
-요즘 연구활동은 어떻습니까.
<> 장박사 =지난 90년 귀국한뒤 조국을 위해 무언가 유익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91년부터 93년중반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러시아과학기술협력센
터의 자문관으로 일했습니다.
러시아의 기초기술을 한국의 생산기술과 접목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실효를 못거둬 직접 기술개발에 나설 결심을 했지요.
연구개발회사인 창민테크놀러지와 인연이 닿아 작년 12월 부설연구소
설립과 동시에 고정밀 수위.수량측정기 개발에 착수했어요.
한국내에서 기술개발을 시작한지 1년반만에 6건의 국내특허및 국제특허를
출원중입니다.
-연구시스템및 환경이 러시아와 상당히 달라 한국에서 기술개발을
하는데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요.
<> 장박사 =정부 기업 할것없이 기반기술개발 투자를 등한히 하는
편이에요.
한국에는 정부출연연구소 기업부설연구소등 각종 연구기관이 많고
유능한 기술인력들도 적지않지만 부족한 연구비와 소홀한 대우로
개발유인이 떨어지고 있어요.
과학기술개발에 장애가 되는 불필요한 제도나 관행은 과감히 없앨
필요가 있습니다.
물건을 많이 만들기 보다는 연구개발력에서 선두적 지위에 올라야
선진국 대열에 오를수 있어요.
-신문보도를 보면 러시아는 아직도 경제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것
같은데 오랜세월 러시아에 체류한 경험에 비추어 현상황과 앞날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장박사 =한국인들은 옛 소련과 현러시아에 대해 큰 편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군요.
아직도 한국인들중에는 소련이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 북한보다
접근하기 두려운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소련시절은 물론 현재의 러시아는 문학 미술 음악및 과학기술분야에서
세계으뜸으로꼽히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예술이 발달해있다는 것은 국민의 잠재력과 여유를 암시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몰락한 강대국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배울 것도많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지요.
러시아는 현재 구체제가 파괴되고 새로운 정치 경제체제의 안정을
찾기위한 과도기에 있습니다.
공산당정권에서 특권을 누려왔던 보수파들이 정권재장악을 위해
암약하는 점이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어요.
한국의 대러시아 외교정책은 한.러시아간 교류의 역사 전통을 면밀히
분석한 바탕위에서 수립돼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 공과대학과 연구소분야에 지면이 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 연구원들의 연구의욕이라든가 공대학생들의 학습태도는 어떻습니까.
페레스트로이카이후 달라진 점이 무엇입니까.
<> 장박사 =과거에는 과학기술투자가 많아 낭비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개혁이후 92년부터 상황이 달라졌어요.
연구기관에 배정하는 국가예산이 50%이상 삭감되고 연구기관을 독립채산방식
으로 운영토록 제도화해 수익을 내야만 유지할수 있게 됐습니다.
이처럼 러시아 연구기관들이 재정난에 빠져있을 때가 한국기업들에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에서 기술공동개발과 도입이 쉬웠는데도 시기를
놓쳐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이틈을 타 서구국가들,특히 미국이 상당한 비용을 들여 러시아와
독점기술개발계약을 체결해버렸지요.
시장경제로의 개혁바람을 타고 러시아대학에도 공학전공 희망자가
늘고있어 기술개발의 전망은 밝다고 봅니다.
과학기술 인재양성의 수준도 세계적이라 할만 합니다.
학생들의 연구개발노력도 대단합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공과대학들이 분야별로 세분화돼 전문대학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한국인들은 이런 대학을 전문대라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
전문대학 출신들이 러시아 첨단기술개발의 주역임을 알아야 합니다.
-북한에서 생활하는 기간중 독재정권의 특성과 주민의식을 피부로
느꼈을 것으로 압니다.
김일성사후 신정권의 앞날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장박사 =북한의 앞날에 대해선 점치고 싶지않아요.
구소련이나 동구권과는 비교할수 없는 특수한 정치형태를 띠고있어
예측이 어려운 나라입니다.
다만 이런 조짐은 확연한 것같아요.
러시아 동구의 국민들이 인접 유럽국가들의 영향으로 정치 경제에
대한 의식수준과 개혁의지가 강했던데 비해 북한국민들의 의식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함이 없는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힘으론 결코 노동당정권을 붕괴시킬수 없을 것으로 봅니다.
아직 중국의 지지를 상실하지 않고있고 지배층이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과정과 결말을 잘알고 있어 고삐를 더욱 죌 공산이 큽니다.
게다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정책에서도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듯해요.
-아직도 우리사회엔 사상이란 해묵은 논쟁거리가 남아있습니다.
이념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충고가 있을 것같은데요.
<> 장박사 =이념도 사상도 없다면 살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인류가 존재하는한 사상 이념과 갈등이 존재하게 마련이지요.
다만 다양한 이념 사상이 서로 용인되고 좋은 점을 상호 받아들여
더좋은 이념을 형성해 나갈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 제안을
받아 분석하고 최상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아니겠습니까
.
민주사회는 어떤 정치인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지혜와
민도에 의해 발전돼 나가는 것이겠지요.
-장박사의 전공은 수리분야입니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성수대교사건은 국가적으로 흉사였습니다.
러시아의 수리치수사업과 우리현실을 객관적으로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 장박사 =20년도 못된 다리가 붕괴된 성수대교사건등 건축물의
붕괴사고는 경제성장과정에서 온나라가 앞만보고 치달아온 한국병
탓이겠지요.
사람이 태어나 소아병을 앓는 과정에서 면역성을 길러 성인으로
자라듯 산업도 성장속도가 있는 법인데 지나치게 서두르다보니 다른나라들이
수십년 수백년전에 앓았던 소아병을 우리는 지금 겪는 것이지요.
행정부 건설회사의 잘못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건설전문가들의 무원칙
무책임을 탓하고 싶습니다.
전문가들이 윗사람 눈치를 보지않고 설계한 것에 대해선 원칙대로
지도 감독할수 있는 풍토가 돼야해요.
러시아의 경우 건축물에 사고가 생기면 당장 설계자가 처벌을 받게
됩니다.
설계자가 건설공정을 감시하고 준공사인을 하며 보수유지 보수관리비책정등
총체적인 일을 맡아하기 때문이지요.
러시아의 건물 교량등이 1백~2백년 이상 건재한 것은 이같은 메커니즘이
확립돼있기 때문입니다.
-장박사의 생애는 냉전시대의 지식인이 겪어야했던 가장 비극적인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는 평안한 여생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향후계획을 들려주십시오. <> 장박사 =젊은시절 야망도 컸으나 온갖
풍상을 겪다보니 이젠 소박한 현실주의자로 바뀌었습니다.
현실성있는 목표를 세워 하나하나 수행해 나가려 합니다.
한국의 독창적인 신기술을 개발하여 세계시장에 공급하고 국위선양에
조금이나마 기여할수 있으면 더없는 보람이겠지요.
수문관측계측기등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중인 만큼 선진국회사들이
기술이전을 요청할 날이 멀지않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반년에 한번씩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있는데 한국 체재기간동안 신기술개발에
힘써 내년에도 5개정도의 특허를 낼 예정입니다.
조국의 젊은 기술자들이 기술개발의욕과 역량을 키울수있도록 독려
지도하면서 여생을 보내려합니다.
대담자 : 박성원 (산업2부장)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7일자).
독립투사 가정의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16세의 어린나이에 38선을 넘어
북한사회의 일원이 됐으나 숨막힐 것 같은 북한체제에 항거, 두만강을 건너
구사일생의 소련망명을 택했다.
소련에서 그 어렵다는 공학박사 학위를 따고 32건의 발명특허를 얻는등
일가를 이룬 그는 한때나마 정상급 과학자로서 영예의 삶을 누린다.
망국의 수난속에서 태어나 분단과 이산의 비애를 겪으며 냉전시대를 몸으로
부딪쳐 살아온 그의 일생은 한 지성인의 기구한 영욕의 삶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형제들은 지금도 러시아 일본 한국 등 4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공산주의를 동경하여 중학교 2학년의 철부지로 월북한 이후 한시도 잊지
못했던 고국땅을 밟은 것은 42년만의 일로 지난 90년.
그때 그의 망막속에는 "이북에서라도 학업을 계속하라"며 등을 떠밀던
어머니의 환영뿐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조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온몸을 바치고
있다.
-요즘 연구활동은 어떻습니까.
<> 장박사 =지난 90년 귀국한뒤 조국을 위해 무언가 유익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91년부터 93년중반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러시아과학기술협력센
터의 자문관으로 일했습니다.
러시아의 기초기술을 한국의 생산기술과 접목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실효를 못거둬 직접 기술개발에 나설 결심을 했지요.
연구개발회사인 창민테크놀러지와 인연이 닿아 작년 12월 부설연구소
설립과 동시에 고정밀 수위.수량측정기 개발에 착수했어요.
한국내에서 기술개발을 시작한지 1년반만에 6건의 국내특허및 국제특허를
출원중입니다.
-연구시스템및 환경이 러시아와 상당히 달라 한국에서 기술개발을
하는데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요.
<> 장박사 =정부 기업 할것없이 기반기술개발 투자를 등한히 하는
편이에요.
한국에는 정부출연연구소 기업부설연구소등 각종 연구기관이 많고
유능한 기술인력들도 적지않지만 부족한 연구비와 소홀한 대우로
개발유인이 떨어지고 있어요.
과학기술개발에 장애가 되는 불필요한 제도나 관행은 과감히 없앨
필요가 있습니다.
물건을 많이 만들기 보다는 연구개발력에서 선두적 지위에 올라야
선진국 대열에 오를수 있어요.
-신문보도를 보면 러시아는 아직도 경제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것
같은데 오랜세월 러시아에 체류한 경험에 비추어 현상황과 앞날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장박사 =한국인들은 옛 소련과 현러시아에 대해 큰 편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군요.
아직도 한국인들중에는 소련이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 북한보다
접근하기 두려운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소련시절은 물론 현재의 러시아는 문학 미술 음악및 과학기술분야에서
세계으뜸으로꼽히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예술이 발달해있다는 것은 국민의 잠재력과 여유를 암시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몰락한 강대국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배울 것도많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지요.
러시아는 현재 구체제가 파괴되고 새로운 정치 경제체제의 안정을
찾기위한 과도기에 있습니다.
공산당정권에서 특권을 누려왔던 보수파들이 정권재장악을 위해
암약하는 점이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어요.
한국의 대러시아 외교정책은 한.러시아간 교류의 역사 전통을 면밀히
분석한 바탕위에서 수립돼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 공과대학과 연구소분야에 지면이 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 연구원들의 연구의욕이라든가 공대학생들의 학습태도는 어떻습니까.
페레스트로이카이후 달라진 점이 무엇입니까.
<> 장박사 =과거에는 과학기술투자가 많아 낭비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개혁이후 92년부터 상황이 달라졌어요.
연구기관에 배정하는 국가예산이 50%이상 삭감되고 연구기관을 독립채산방식
으로 운영토록 제도화해 수익을 내야만 유지할수 있게 됐습니다.
이처럼 러시아 연구기관들이 재정난에 빠져있을 때가 한국기업들에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에서 기술공동개발과 도입이 쉬웠는데도 시기를
놓쳐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이틈을 타 서구국가들,특히 미국이 상당한 비용을 들여 러시아와
독점기술개발계약을 체결해버렸지요.
시장경제로의 개혁바람을 타고 러시아대학에도 공학전공 희망자가
늘고있어 기술개발의 전망은 밝다고 봅니다.
과학기술 인재양성의 수준도 세계적이라 할만 합니다.
학생들의 연구개발노력도 대단합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공과대학들이 분야별로 세분화돼 전문대학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한국인들은 이런 대학을 전문대라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
전문대학 출신들이 러시아 첨단기술개발의 주역임을 알아야 합니다.
-북한에서 생활하는 기간중 독재정권의 특성과 주민의식을 피부로
느꼈을 것으로 압니다.
김일성사후 신정권의 앞날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장박사 =북한의 앞날에 대해선 점치고 싶지않아요.
구소련이나 동구권과는 비교할수 없는 특수한 정치형태를 띠고있어
예측이 어려운 나라입니다.
다만 이런 조짐은 확연한 것같아요.
러시아 동구의 국민들이 인접 유럽국가들의 영향으로 정치 경제에
대한 의식수준과 개혁의지가 강했던데 비해 북한국민들의 의식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함이 없는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힘으론 결코 노동당정권을 붕괴시킬수 없을 것으로 봅니다.
아직 중국의 지지를 상실하지 않고있고 지배층이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과정과 결말을 잘알고 있어 고삐를 더욱 죌 공산이 큽니다.
게다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정책에서도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듯해요.
-아직도 우리사회엔 사상이란 해묵은 논쟁거리가 남아있습니다.
이념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충고가 있을 것같은데요.
<> 장박사 =이념도 사상도 없다면 살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인류가 존재하는한 사상 이념과 갈등이 존재하게 마련이지요.
다만 다양한 이념 사상이 서로 용인되고 좋은 점을 상호 받아들여
더좋은 이념을 형성해 나갈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 제안을
받아 분석하고 최상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아니겠습니까
.
민주사회는 어떤 정치인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지혜와
민도에 의해 발전돼 나가는 것이겠지요.
-장박사의 전공은 수리분야입니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성수대교사건은 국가적으로 흉사였습니다.
러시아의 수리치수사업과 우리현실을 객관적으로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 장박사 =20년도 못된 다리가 붕괴된 성수대교사건등 건축물의
붕괴사고는 경제성장과정에서 온나라가 앞만보고 치달아온 한국병
탓이겠지요.
사람이 태어나 소아병을 앓는 과정에서 면역성을 길러 성인으로
자라듯 산업도 성장속도가 있는 법인데 지나치게 서두르다보니 다른나라들이
수십년 수백년전에 앓았던 소아병을 우리는 지금 겪는 것이지요.
행정부 건설회사의 잘못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건설전문가들의 무원칙
무책임을 탓하고 싶습니다.
전문가들이 윗사람 눈치를 보지않고 설계한 것에 대해선 원칙대로
지도 감독할수 있는 풍토가 돼야해요.
러시아의 경우 건축물에 사고가 생기면 당장 설계자가 처벌을 받게
됩니다.
설계자가 건설공정을 감시하고 준공사인을 하며 보수유지 보수관리비책정등
총체적인 일을 맡아하기 때문이지요.
러시아의 건물 교량등이 1백~2백년 이상 건재한 것은 이같은 메커니즘이
확립돼있기 때문입니다.
-장박사의 생애는 냉전시대의 지식인이 겪어야했던 가장 비극적인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는 평안한 여생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향후계획을 들려주십시오. <> 장박사 =젊은시절 야망도 컸으나 온갖
풍상을 겪다보니 이젠 소박한 현실주의자로 바뀌었습니다.
현실성있는 목표를 세워 하나하나 수행해 나가려 합니다.
한국의 독창적인 신기술을 개발하여 세계시장에 공급하고 국위선양에
조금이나마 기여할수 있으면 더없는 보람이겠지요.
수문관측계측기등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중인 만큼 선진국회사들이
기술이전을 요청할 날이 멀지않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반년에 한번씩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있는데 한국 체재기간동안 신기술개발에
힘써 내년에도 5개정도의 특허를 낼 예정입니다.
조국의 젊은 기술자들이 기술개발의욕과 역량을 키울수있도록 독려
지도하면서 여생을 보내려합니다.
대담자 : 박성원 (산업2부장)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