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피"(원제 Santa Sangre)는 "필름의 샤먼"으로 불리는 멕시코
컬트무비의 거장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가 9년의 공을 들여 제작한 작품
이다.

존 레논이 영화의 세계배급권을 사버렸다해서 화제가 됐던 "엘 토포"로
일약 세계적인 컬트무비 감독으로 떠오른 그는 20여년전 멕시코를
떠들썩하게 했던 엽기적 살인사건을 자신만의 독특한 영상미학으로
재구성해냈다.

30명의 여자를 살해한후 정원에 파묻어 버린 장본인을 수차례에 걸쳐
인터뷰한 후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조도로프스키감독은 "결코 잊을수 없는
영상으로 관객들의 영혼에 상처를 주고 싶었다"고 제작의 변을 토해냈다.

서커스단장인 아버지와 곡예사인 어머니밑에서 꼬마 서커스단원으로
어린시절을 보내는 주인공 피닉스는 어머니 콘짜에게 외도현장을 들킨
아버지가 그녀의 두 팔을 잘라내고 자살하자 그 충격으로 정신병자가 된다.

성장한 피닉스는 정신병원을 탈출해 팔 없는 어머니의 팔노릇을 하며
기이한 마임쇼를 공연한다.

그러나 콘짜는 강간을 당하고 두 팔을 잘려 "성스러운 피"를 흘리며
죽어간 한 처녀를 성녀로 모시는 사이비교의 맹신도.

아들에게 접근하려는 모든 여자를 증오하는 콘짜의 심리는 피닉스에게는
저주가돼 마치 몽유병환자처럼 여자들을 죽여간다.

전신의 털이 곤두설 만큼 끔찍한 살인이 계속되던 어느날, 피닉스의
소꼽친구인 벙어리 소녀 알마가 청순한 처녀로 성장해 나타난다.

피닉스 아버지와 정을 통하던 서커스단원의 딸인 알마는 피닉스에게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존재.

알마의 가슴에도 칼을 꽂으라는 어머니의 명령에 온 몸으로 저항하던
피닉스는 결국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박고 만다.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문양을 떠올리는 신화적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충격적인 이미지와 잔혹한 영상이 조금은 낯설지 모르지만 영화전편에
흐르는 쉬르 리얼리즘적인 분위기가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공포속에만 예술이 있다"라는 조도로프스키의 영화철학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26일 동숭아트 씨네하우스개봉)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