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배정혜씨(41)는 "기인기화"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작가이다.

자신의 하루일과를 기록으로 남기듯이 생활의 이모저모를 그림에 솔직히
담아내기 때문이다.

일상속에서 일어나거나 일어날수 있는 사실, 즉 즐거움과 고달픔, 애환등을
잔잔한 필치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23일-12월7일 서울강남구신사동 예화랑(542-5543)에서 열리는 배씨의
개인전에는 이같은 "생활속의 느낌"을 담은 작품들이 선보인다.

"그림은 자기자신의 반영이기 때문에 솔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삶자체
가 그림속에 융합이 돼야지요. 평소 생활에서 느끼는 것들, 머무르고 싶거나
떠나고 싶은 ''안주와 일탈의 심리''를 표현해 봤습니다"

배씨는 "많은 사람들이 제 그림을 통해 공감하게 되고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출품작은 유화20여점과 조선시대 목기와 제기위에 유화를 그려넣은 작품
4점, 판화 2점등 총 30점.

단순명쾌한 구도,밝고 예쁜 색채, 탁자에 기대어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 꽃병과 거기에 꽃힌 꽃들, 깨끗하게 정리된 마띠에르등은 그림을 단정
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게 한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치밀한 묘사보다는 과감한 축약, 시각의 변경,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선의 구도등의 표현기법으로 일상의 감성들이 잔잔하게
표출되고 있다.

발색을 위해 10번까지도 겹칠을 한다는 배씨는 "우리선조들의 민화나
자수보자기등에서 색감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면서 "이때문에 자수박물관등
을 자주 찾는다"고 말한다.

"요즘에는 가끔씩 옛날 찬합이나 목판등 목기에 직접 그림을 그려넣기도
하는데 캔버스보다 발색이 더 좋아요. 문짝 제기등 고미술품자체가 현대
감각이 뛰어나 캔버스로 삼아 유화를 그려도 잘 어울립니다"

배씨는 "항상 젊은 감성으로 새로운 기법을 개발, 심도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배씨는 이화여대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미국텍사스주립대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은 이번이 여섯번째로 지난76년 미국유학이후 80년 전미대학원우수
학생작품공모전입상초대전등 각종 그룹전과 공모전을 가져오는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