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은행장이 상납을 받고 몇몇 사람을 점포장으로 임명했다더라. 이것이
문제가 돼서 사정당국이 내사에 나섰으나 별것 아니었다더라"

지난8월 금융가에선 이런 소문이 나돌았다. 진상은 이랬다.

취임한지 얼마 안된 한 은행장은 다소 무리로 비춰지는 점포장 인사를
했다. 당연히 "뭔가 있을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뭐"는 결국 "돈"
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투서"를
보냈다.

"돈을 받고 점포장자리를 팔았다"는 소문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전권을 휘두르는 은행장들이 득세하던 시절엔 인사철마다
이런 소문이 끈덕지게 나돌았다.

어느 조직에서나 마찬가지로 인사권은 최고경영자가 가진 권력의
바탕이다.

더욱이 은행장은 3백-4백여명에 이르는 "소행장"들을 거느린 "대행장"인
만큼 인사권한은 더욱 막강할수 밖에 없다.

이런 권한을 토대로 은행장들은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아울러
은행을 자기색깔로 물들이고 경영방향을 바꿔가기도 한다.

그러나 인사는 어디까지나 "제로섬게임"이다. 자리는 한정된 반면
후보자는 많기 마련이다. 인사때마다 뒷말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6월 장명선외환은행장은 취임후 첫작품을 선보였다.

14명의 1급승진과 음지에서 고생하던 사람들을 중용한 것이 골자.

발표자료가 "국내점포장-국외점포장-영업본부장-본점부장"순이었을
정도로 영업통임을 자임하는 장행장다운 인사였다.

그렇다고 비판적인 시각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조사역으로 들어앉은 11명을 다시 점포장으로 복귀
시킨게 불만의 핵심. "아무리 사기앙양차원이라지만 인사적체를 부채질
한다"는게 일부 직원들의 볼멘소리였다.

장행장이 지난 7일 신설한 국제본부부본장자리를 놓고도 그랬다.

장행장은 국제업무를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국제본부에 부본부장자리를
만들어 석모전뉴욕지점장을 발령냈다.

능력이나 이력으로 보아 그만한 적임자도 없다는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이론은 예외없이 제기됐다.

석부본부장은 장행장이 캐나다현지법인사장시절 뉴욕지점장을 지냈던
인물. 현직에서 물러난 장사장을 깍듯이 모셨던 석지점장에 대한 보은성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었다.

손홍균서울신탁은행장은 주총직후 한동안 "인사몸살"을 앓아야 했다.

결국 하룻동안의 해프닝으로 끝나고만 신규태현대정유감사의
"상무백업시도"는 그렇다고 치자. 이어서 단행한 부.차장급인사는
두고두고 뒷말을 낳았다.

자신의 은행장복귀에 도움을 줬거나 과거 자기사람을 중용했다는 비난은
"왜곡된 인사관행을 바로잡는 과정"이라는 은행측의 변명을 궁색하게했다.

이런 뒷말로 인해 각 은행에는 인사관행을 비꼬는 속설들이 돌아다닌다.

서울신탁은행의 "골품제도"가 대표적이다.

"호남출신 서울대출신 신탁은행출신"등 이른바 "3불가"에 걸리면 아무리
유능해도 요직에 발탁되기는 힘들었다는 것이다.

김준협행장(경북영주 고대법대 서울은행출신)시절의 파행인사를 빗댄
말이다.

이원조전의원의 영향력이 10여년 계속된 제일은행도 "은행은 1등이지만
인사는 2등"이라는 불명예를 한동안 감수해야만 했다.

상업은행에서 한때 유행했던 "인사부 고대 노조 비서실출신이 우대
받는다"는 "인고노비"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뒷말이 무섭다고 해도 은행장들은 유능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쓰지 않을수는 없다.

임원은 물론이거니와 구린돈까지를 관리해야하는 비서실장이나 주요
부장 일급점포장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지난 주총때 상업은행에선 임원인사보다는 부장인사가 화제가 됐다.

정지태상업은행장은 서광하부장의 임원승진으로 공석이된 종합기획부장
에 윤강석전산부장을 전격 발탁했다.

윤부장은 20여년동안 전산업무에만 종사해온 자타가 공인하는
전산전문가.

"앞으론 전산이 은행간 경쟁을 좌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은행업무를
총괄하는 종기부장에 전산전문가를 앉혔다"는 정행장의 설명앞엔
"윤부장이 정행장의 서울법대후배였기 때문"이라는 비난도 수그러들수
밖에 없었다.

결국 문제가 되는건 인사의 투명성이다.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은행장이라 하더라도 객관성을 갖지
못하면 내부통솔에 문제가 생긴다.

그런 면에서 이철수제일은행장이 취임직후부터 가동중인 대리 차장은
물론 부장이나 임원후보를 위원들이 무기명으로 평가토록 하는
"비상설인사위원회"는 눈여겨볼만 하다.

은행장들을 불명예퇴진으로 끌고간 근인이 파행인사였다는걸 이행장은
꿰뚫었다고나 할까.

<하영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