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백제 사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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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인들의 생활에 일종의 산업혁명을 일으켜 고대통일국가 형성의
원동력이 된 것은 철의 개발이었다.
학자들은 서아시아의 아나토티아고원에 있던 히타이트제국(BC1450~1200)
이 최초로 인공철을 생산해 이것이 세계각지로 전파됐다고 추정하고 있다.
대체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BC13세기,이집트는 BC12세기,이란은
BC10세기,유럽은 BC9~8세기께에야 철이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온다.
BC8세기께는 북방 흑해연안에도 야철술이 전파돼 스키타이문화를 꽃피게
했고 이것이 다시 중앙아시아를 거쳐 춘추시대말에서 전국시대초에 걸쳐
중국에 파급됐다고 한다.
일제시대의 일인학자들은 한국에는 청동기시대 내지 철기시대라는
인류역사의 보편적 발전과정이 없었으며 석기를 소유한 한국인들이
외래의 금속문화와 접촉하면서 생겨난 비약적 과도기가 "금석병용기"
였다고 못박아 놓았다.
한국사는 태고부터 북쪽은 중국의 식민지,남쪽은 일본의 영향아래 성립
됐다는 외세의 역할을 강조한 식민사관에서 나온 이 학설은 한국인은
석기문화를,외래인은 금속문화를 사용했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 그들의
식민정책을 정당화시키려는데 있었다.
남한의 학계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시작한 것은 북한보다
10여년이나 뒤늦은 60년대 부터였다.
청동기와 철기문화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유적과 한국의 독특한 유물이
잇달아 발굴됨에 따라 한국에도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라는 발전과정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경기도 가평군 마장리,경남 창원 성산부락,경주 외동면 두계리
등지에서 발굴된 삼국시대의 사철지들은 한국인들이 이미 그보다
오래전부터 야철술을 익혀 철을 생산해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귀중한 유적들이다.
지금까지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학자에 따라 다소 견해가 다르기는
해도 한국에는 중국의 철기문화가 고조선말인 BC4세기께 만주로부터
압록강중류와 청천강상류를 거쳐 대동강유역으로 들어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으며 이것이 일본의 야요이(미생)문화를 낳게했다는 것이
통설로 돼있다.
최근 충북 진천군덕산면석장리에서 여러가지 제철로를 갖춘 백제초기
(3세기말에서 4세기초)의 대규모 제철단지가 발굴됐다.
그중 상자형태의 사철로는 6세기이후에 나타나는 일본제철로의 조형인
것으로 알려져 백제의 제철기술이 일본으로 전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흔치않은 유적이 백제를 비롯한 삼국의 국가기원을 밝히는데도 획기적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0일자).
원동력이 된 것은 철의 개발이었다.
학자들은 서아시아의 아나토티아고원에 있던 히타이트제국(BC1450~1200)
이 최초로 인공철을 생산해 이것이 세계각지로 전파됐다고 추정하고 있다.
대체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BC13세기,이집트는 BC12세기,이란은
BC10세기,유럽은 BC9~8세기께에야 철이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온다.
BC8세기께는 북방 흑해연안에도 야철술이 전파돼 스키타이문화를 꽃피게
했고 이것이 다시 중앙아시아를 거쳐 춘추시대말에서 전국시대초에 걸쳐
중국에 파급됐다고 한다.
일제시대의 일인학자들은 한국에는 청동기시대 내지 철기시대라는
인류역사의 보편적 발전과정이 없었으며 석기를 소유한 한국인들이
외래의 금속문화와 접촉하면서 생겨난 비약적 과도기가 "금석병용기"
였다고 못박아 놓았다.
한국사는 태고부터 북쪽은 중국의 식민지,남쪽은 일본의 영향아래 성립
됐다는 외세의 역할을 강조한 식민사관에서 나온 이 학설은 한국인은
석기문화를,외래인은 금속문화를 사용했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 그들의
식민정책을 정당화시키려는데 있었다.
남한의 학계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시작한 것은 북한보다
10여년이나 뒤늦은 60년대 부터였다.
청동기와 철기문화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유적과 한국의 독특한 유물이
잇달아 발굴됨에 따라 한국에도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라는 발전과정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경기도 가평군 마장리,경남 창원 성산부락,경주 외동면 두계리
등지에서 발굴된 삼국시대의 사철지들은 한국인들이 이미 그보다
오래전부터 야철술을 익혀 철을 생산해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귀중한 유적들이다.
지금까지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학자에 따라 다소 견해가 다르기는
해도 한국에는 중국의 철기문화가 고조선말인 BC4세기께 만주로부터
압록강중류와 청천강상류를 거쳐 대동강유역으로 들어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으며 이것이 일본의 야요이(미생)문화를 낳게했다는 것이
통설로 돼있다.
최근 충북 진천군덕산면석장리에서 여러가지 제철로를 갖춘 백제초기
(3세기말에서 4세기초)의 대규모 제철단지가 발굴됐다.
그중 상자형태의 사철로는 6세기이후에 나타나는 일본제철로의 조형인
것으로 알려져 백제의 제철기술이 일본으로 전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흔치않은 유적이 백제를 비롯한 삼국의 국가기원을 밝히는데도 획기적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