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든 음악이든, 우리가 예술 작품을 접할 때 가장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은 작가 혹은 연주자가 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져 올 때다.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못할 것만 같던 내 마음이 작품에 담겨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외로운 마음이 치유되고 나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의 힘이 생겨난다. ‘아! 당신도 그랬구나!’와 같은 그런 위안이야말로 바로 예술이 갖는 치유의 힘의 바탕일 것이다.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포도뮤지엄에서는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피하고 싶은 쇠락의 늪이 아니라, 여전히 ‘나’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시간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전시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앨런 벨처, 루이스 부르주아, 셰릴 세인트 온지, 정연두, 민예은, 로버트 테리엔, 더 케어테이커 & 이반 실, 데이비스 벅스, 시오타 치하루, 천경우다.전시장에서 제일 처음 마주하는 앨런 벨처의 ‘바탕화면’이라는 작품은 JPEG라는 이미지 파일의 확장자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데 그 이미지 파일들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기억하고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이제는 열어볼 수도 없고 기억해낼 수 없는 단순한 기호로만 남아 있다. 기억하고 싶은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나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그런 불안을 뒤집어 놓는 것은 사진작가 셰릴 세인트 온지의 ‘새들을 집으로 부르며’였다. 그의 어머니는 2015년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았고, 수십 년간 함께 살아온 모녀의 추억과 감정은 어머니의 기억과 함께 점점 상실돼 가는 듯했다. 어머니 때문에 몇 년간 활동을 중단한 작가는
“남편은 죽었지만 이혼 신청합니다.”결혼 생활 15년 차인 가요코는 남편 사망 소식을 듣고 시댁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어떤 음식을 해 먹였길래 내 아들이 갑자기 죽었냐”는 시어머니의 폭언은 견디기 힘들었다. 가요코는 바로 ‘사후(死後) 이혼’ 절차를 밟았다. 2018년 한국에서도 출간된 일본 소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의 한 장면이다.이런 일화는 소설 속만의 얘기가 아니다. 일본에서 사후 이혼으로 불리는 ‘인족(姻族·혼인으로 맺어진 인척) 관계 종료 신고’ 건수가 급증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2022년에만 3000건을 넘어 2012년(2213건)에 비해 30% 이상 늘었다. 세대 간 인식 차이가 가장 큰 이유였다. 젊은 층은 결혼을 개인 간 유대 정도로 보는데 노령층은 여전히 결혼을 가족 간 결합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자 사망 후에 배우자 가족을 부양하는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사후 이혼을 선택한다는 얘기다.일본 민법(728조)에 따르면 생존한 배우자가 사후 이혼 신고서를 관공서에 내면 인척 관계를 끊을 수 있다. 배우자 사후에 언제든 신청할 수 있고 배우자 부모 동의도 필요 없다. 일반적 이혼과 달리 배우자의 유산 상속이나 유족연금 수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신청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긴 데다 사회 통념상 여성에게 요구되는 배우자 가족에 대한 봉양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결혼하면 아내가 남편 성(姓)을 따르는데 본래 자기 성으로 돌아가겠다는 ‘복씨(復氏) 신고’도 인족 관계 종료 신청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한국에선 일본과 똑같은 형태의 사후 이혼을 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2번째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양자 협력, 역내 협력, 글로벌 협력 방향에 머리를 맞댔다. 이달 말 사임하는 기시다 총리의 요청으로 이뤄진 이번 회담을 통해 두 나라는 셔틀외교 복원과 한층 성숙한 양국 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야당이 ‘혈세 탕진 이임 파티’라며 감정적 비난을 쏟아내지만 저급한 인식에 불과하다. 기시다는 퇴임 후에도 상당한 입김을 발휘할 수 있는 일본 정계 실력자인 데다 컴백 가능성도 제기된다.여러 외교 성과도 나왔다. 까다롭기로 정평 난 일본 입국 심사를 국내 공항에서 끝낼 수 있는 사전입국심사제도가 논의됐다. 제3국에서 유사시 자국민 대피에 협력하기로 한 점은 국민 생명 보호를 위한 일보 전진이다. 광복 직후 귀국길에 오른 우키시마호 선체 폭발로 사망한 조선인 탑승자 명부도 돌려받았다. 역사 갈등의 한 소재였던 만큼 윤 대통령이 일본에 요구한 ‘반 컵 채우기’의 일환으로 평가할 만하다.세세한 성과를 떠나 일본과의 협력은 한·미 동맹과 맞물려 돌아가는 우리 외교의 핵심 톱니바퀴다. 미국 공화당·민주당이 모두 새 정강에서 ‘북 비핵화’ 문구를 삭제한 터에 일본의 외교·안보적 가치는 더 커졌다. 만에 하나 미·북이 핵 동결과 제재 완화를 주고받으며 국익을 위협하려고 할 경우 일본은 공동전선을 펼 수 있는 강력하고 거의 유일한 파트너다. 유사시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후방기지 7곳이 갖는 대북 억지력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중국이 전랑 외교에서 상호 존중, 호혜, 공동 이익의 원칙에 기반한 협력으로 선회한 것도 대일 관계 개선에 기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