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세계를 보고 뛰어라' 펴낸 이한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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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화가 중요하다는 사실만 인정될뿐 국제화의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긴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장(50)이 펴낸 "세계를 보고 뛰어라"(동아일보사간)는
시민 기업 정부등 사회각층이 국제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술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만 단기적으로는 누구에게나
부담스럽고 귀찮은게 국제화입니다. 특히 농민이나 중소기업과 같은 경제적
약자는 더 큰 피해의식을 느낄수 있죠. 국제화 과정의 이러한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민의식의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책은 21세기를 앞둔 한국사회의 가장 큰 과제인 선진국으로의 길과
국제화및 개방화의 파고넘기를 위한 방안을 각종 통계자료와 아시아 남미
유럽등 세계각지의 사례를 들어 제시하고 있다.
이박사는 국제화 시대에서 "약자는 나쁜 것(악)"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철저한 거래와 이성적 이해타산, 냉정한 계약이 중시되기 때문에 경쟁력
없이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자본주의원칙이 생활화되면 부익부빈익빈현상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저항이 생길수 있죠"
이박사는 국제화 과정에서의 부담과 저항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는 지금
부터라도 구조조정을 통해 사회 각부문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기업은 세계를 대상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 개인은 개인대로 이제는 나라도 세계라는 보다 큰 사회의 한 구성원에
불과할 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외국인과 외국기업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게
중요하다고 밝힌다.
이박사는 84년부터 2년반동안 (주)대우 회장실에서 근무하면서 100여개국을
돌아다닌뒤 국제화의 필요성을 절감, 정책을 제안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45년 경북경주에서 출생, 서울대경영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캔자스주립대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실과 재무부에 근무했고 (주)대우 상무이사를 지냈다.
< 권성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5일자).
그러나 국제화가 중요하다는 사실만 인정될뿐 국제화의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긴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장(50)이 펴낸 "세계를 보고 뛰어라"(동아일보사간)는
시민 기업 정부등 사회각층이 국제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술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만 단기적으로는 누구에게나
부담스럽고 귀찮은게 국제화입니다. 특히 농민이나 중소기업과 같은 경제적
약자는 더 큰 피해의식을 느낄수 있죠. 국제화 과정의 이러한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민의식의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책은 21세기를 앞둔 한국사회의 가장 큰 과제인 선진국으로의 길과
국제화및 개방화의 파고넘기를 위한 방안을 각종 통계자료와 아시아 남미
유럽등 세계각지의 사례를 들어 제시하고 있다.
이박사는 국제화 시대에서 "약자는 나쁜 것(악)"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철저한 거래와 이성적 이해타산, 냉정한 계약이 중시되기 때문에 경쟁력
없이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자본주의원칙이 생활화되면 부익부빈익빈현상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저항이 생길수 있죠"
이박사는 국제화 과정에서의 부담과 저항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는 지금
부터라도 구조조정을 통해 사회 각부문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기업은 세계를 대상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 개인은 개인대로 이제는 나라도 세계라는 보다 큰 사회의 한 구성원에
불과할 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외국인과 외국기업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게
중요하다고 밝힌다.
이박사는 84년부터 2년반동안 (주)대우 회장실에서 근무하면서 100여개국을
돌아다닌뒤 국제화의 필요성을 절감, 정책을 제안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45년 경북경주에서 출생, 서울대경영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캔자스주립대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실과 재무부에 근무했고 (주)대우 상무이사를 지냈다.
< 권성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