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 <럭키 여천공장 기술팀 대리>

87년12월 "신입사원"으로 불렸던 나는 그로부터 7년후 어느덧 중견사원
으로 변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신입사원으로서의 1년은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말이다.

신입사원으로 1개월간 해당 부서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6개월간
현업에 배치되어 선배사원으로부터 여러가지 업무지식을 전수받았다.

화공을 전공한 탓에 학교에서 배운 여러가지 석유화학 용어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기계와 장치들을 접해보니 이론과 실기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았다.

이론은 이론일뿐이었다. 현장에서 필요한 갖가지 노하우는 알턱이
없었다. 우물안 개구리라는 것을 실감했다.

근무시간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1일3교대로 근무조가
편성되어 있었다.

모닝조는 오전7시부터 오후3시까지,이브닝조는 오후3시부터 오후11시
까지, 나이트조는 오후11시부터 오전7시까지 근무한다. 이렇게 편성된
근무조는 특별한 일이 없는한 1년간 운영된다.

처음엔 모닝조로 근무했다. 새벽6시20분에 기숙사에서 통근 버스를
타고 6시35분에 공장에 도착한다. 공장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다음
근무자로부터 업무를 인수한다.

우선 그날의 생산현황 컨트롤룸 현장상황등을 파악한다. 8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몰랐다.

오후3시10분쯤 공장 샤워실에 가서 샤워를 한 다음 자기계발의 시간을
가졌다.

공장연수원에서 영어 일어 중국어회화를 공부하는 것이었다. 강사도
1류급이다. 어학은 진급시험에도 물론 필수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장에서 외국기술자들과 대화를 하기위한 것이 더 중요한
이유일수 있다.

외국어 실력이 탁월하면 외국 기술자들로부터 첨단정보나 기술을 습득
하기에 유리하다. 더욱이 그들과 퇴근후에 더욱 친숙해질 수도 있다.

총각이었던 신입사원 시절엔 두사람이 방1칸을 쓰는 기숙사에서 생활
했다. 기숙사는 총각사원에게 더없는 천국(?)이었다.

시청각실 샤워실 세탁실,거기에다 푹신한 침대가 있으니 춘하추동 걱정이
없었다. 학창시절 자취와 하숙을 두루 섭렵한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주거문제도 회사에서 어느정도까지는 해결해준다. 총각사원의
경우 기숙사가 주어지지만 결혼하면 주택이 제공된다.

대리가 되면 사택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 사택은 15평 18평 24평형
등이 있다.

여천시내 인산 둔덕 도원에 사택이 마련되어 있는데 같은 공장에
근무하는 회사사람들이라서 친화력과 따뜻한 정으로 항상 훈훈하다.

직장은 기본적으로 생활의 터전, 그리고 일을 하는 곳이다. 직장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의 세계임을 인식해야 한다.

신입사원들은 항상 궁금증을 가지면서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자세가
바람직한 것같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