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636) 제3부 정한론 : 강화도앞바다 (1)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고, 왕정복고를 이룩한 메이지 유신정부는 외교
문제로 세가지 골칫거리를 안고 있었다.
첫째는 국교를 재개하려는 일본측의 교섭을 받아들이지 않는데서 비롯된
조선국과의 긴장관계였고, 둘째는 가라후도의 영유권 문제로 러시아와
마찰을 빚고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대만의 생번으로 인해서 야기된 청나라와의 알력
이었다.
대만문제는 이제 원정의 감행으로 해결을 보았으니, 남은 것은 조선국과의
국교문제와 러시아와의 가라후도 영유권 문제였다.
가라후도는 일본의 북쪽에 있는 섬인데, 러시아에서는 사할린이라고
부른다.
그 가라후도가 옛날에는 러시아와 연결되어 있는 육지인줄 알았는데,
1808년, 그러니까 도쿠가와 막부가 문을 닫기 60년전에 측량가인 마미야린소
가 그곳을 탐험하여 섬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가라후도와 러시아본토 사이에 있는 해협을 그의 성을 따서
마미야해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황무지와 다를바 없는 그곳에 얼마 안되는 일본인과 러시아인, 그리고
원주민이 산재해서 살고 있었는데, 영유권은 일본과 러시아 어느 쪽에도
속해있지 않은, 말하자면 양국 다 통치권 밖인 애매모호한 땅이었다.
막부가 개국을 하여 미국과 화친조약을 맺은 해인 1854년에 러시아와도
조약을 체결했는데, 그 조약속에 가라후도는 일본과 러시아 두나라 국민의
잡거지라고 규정하였다.
여전히 주인이 없는 땅으로 버려둔 셈이었다.
왕정복고를 이룩한 이듬해에 신정부는 가라후도의 주민실태를 조사해
보았는데, 본토에서 건너간 사람은 2백89명이고, 아이누족이라는 원주민은
3천1백77명이며, 러시아인은 약 2천8백명이었다.
얼굴이 온통 털로 뒤덮이다시피 한 아이누족을 일본인종으로 간주할때
일본인 거주자가 러시아인보다 많았다.
그러나 러시아인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군인이었다.
육해군 부대가 파견되어 있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섬의 남쪽 구춘고단이라는 곳을 중심으로 해서 분포되어
있었고, 러시아인은 북쪽 아니와만 연안에 대부분 정착해 있었는데,
생계수단은 주로 영세한 어업이었다.
그러니까 일본측에서나 러시아측에서나 경제적으로는 거의 도외시해도
되는 그런 섬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정학적 가치였다.
일본으로서는 그 섬이 만약 러시아의 손으로 들어갈 경우에는 직접
홋카이도(북해도)가 위협을 받을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섬의
남쪽 부분만이라도 차지하고 있는게 유리했다.
그래서 그곳 구 코단에 주민보호를 위한 행정기관을 설치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0일자).
문제로 세가지 골칫거리를 안고 있었다.
첫째는 국교를 재개하려는 일본측의 교섭을 받아들이지 않는데서 비롯된
조선국과의 긴장관계였고, 둘째는 가라후도의 영유권 문제로 러시아와
마찰을 빚고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대만의 생번으로 인해서 야기된 청나라와의 알력
이었다.
대만문제는 이제 원정의 감행으로 해결을 보았으니, 남은 것은 조선국과의
국교문제와 러시아와의 가라후도 영유권 문제였다.
가라후도는 일본의 북쪽에 있는 섬인데, 러시아에서는 사할린이라고
부른다.
그 가라후도가 옛날에는 러시아와 연결되어 있는 육지인줄 알았는데,
1808년, 그러니까 도쿠가와 막부가 문을 닫기 60년전에 측량가인 마미야린소
가 그곳을 탐험하여 섬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가라후도와 러시아본토 사이에 있는 해협을 그의 성을 따서
마미야해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황무지와 다를바 없는 그곳에 얼마 안되는 일본인과 러시아인, 그리고
원주민이 산재해서 살고 있었는데, 영유권은 일본과 러시아 어느 쪽에도
속해있지 않은, 말하자면 양국 다 통치권 밖인 애매모호한 땅이었다.
막부가 개국을 하여 미국과 화친조약을 맺은 해인 1854년에 러시아와도
조약을 체결했는데, 그 조약속에 가라후도는 일본과 러시아 두나라 국민의
잡거지라고 규정하였다.
여전히 주인이 없는 땅으로 버려둔 셈이었다.
왕정복고를 이룩한 이듬해에 신정부는 가라후도의 주민실태를 조사해
보았는데, 본토에서 건너간 사람은 2백89명이고, 아이누족이라는 원주민은
3천1백77명이며, 러시아인은 약 2천8백명이었다.
얼굴이 온통 털로 뒤덮이다시피 한 아이누족을 일본인종으로 간주할때
일본인 거주자가 러시아인보다 많았다.
그러나 러시아인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군인이었다.
육해군 부대가 파견되어 있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섬의 남쪽 구춘고단이라는 곳을 중심으로 해서 분포되어
있었고, 러시아인은 북쪽 아니와만 연안에 대부분 정착해 있었는데,
생계수단은 주로 영세한 어업이었다.
그러니까 일본측에서나 러시아측에서나 경제적으로는 거의 도외시해도
되는 그런 섬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정학적 가치였다.
일본으로서는 그 섬이 만약 러시아의 손으로 들어갈 경우에는 직접
홋카이도(북해도)가 위협을 받을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섬의
남쪽 부분만이라도 차지하고 있는게 유리했다.
그래서 그곳 구 코단에 주민보호를 위한 행정기관을 설치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0일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