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경제관료 취재반"에 최근 두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일선 경제행정의 "오염"을 고발한 육필수기다.

먼저 "한달전 당한 봉변에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는 말로 시작된 K시
무허가창고업자 O씨(52)의 편지내용.

"지난달 하루가 멀다하고 구청을 들락거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했습니다. 공무원들의 심기를 잘못 건드려서지요.

저를 포함한 주변 창고업자들은 매달 돈을 거둬 구청 담당공무원에게
"인사"를 해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관행이다 싶어 시청간부와 잘 아는 친척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소개받은 시청간부에게 "구청에서 더 이상 돈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지요.

그런데 정작 돌아온 건 철거위협 뿐이었습니다.

간부를 만난 며칠뒤 망치등 온갖 철거장비를 든 사람들이 저희 창고로
몰려온 거지요.

"창고를 당장 부숴버리겠다"며 말입니다.

어디 제 창고뿐이었습니까.

동료창고업자들도 같은 봉변을 당했습니다.

동료들로부터 "쓸데 없는 짓을 해 화만 자초하고 있다"는 지청구를 들어야
했지요.

이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사태수습을 위해 구청에 가서 백배사죄하고는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상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선공무원들의 못된 버릇좀 고쳐보려다가 혹만 붙인 셈이지요"

다음은 전남 완도에서 염장미역 가공회사를 경영하는 A씨(38)의 편지.

"중앙부처에서 규제완화를 몇백건씩 했다는 신문보도가 저에게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만 같습니다.

귀지에서는 작년 6월 정부가 "기업활동 규제완화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안전관리문제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모든 수출품에 대한 검사를
폐지키로 했다고 보도했지요.

저희 회사는 염장미역을 가공생산해 전량 일본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수출할 때마다 번거로운 검사에 시달렸던 저는 뛸듯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귀지의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최근까지도 수산물검사소에 가서 꼬박꼬박 수수료를 내가며 불필요한
수출검사를 받아야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어디 제대로 항의를 할 수나 있나요.

잘 아시겠지만 저희같은 업자들에겐 수산물검사소는 누구보다도 무서운
상전입니다.

지난 3월 청와대에서 규제완화 점검단이 지방순시차 저희 지역에 출장
나왔을 때 이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그러고도 몇달을 기다려서 9월부터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게 됐습니다.

중앙의 규제완화시책이 현장까지 전달되는데 꼬박 1년이상, 그것도 저희
같은 민원인들이 직접 이리뛰고 저리 뛰어서야 해결된 셈입니다"

지방경제관료-.

중앙경제부처가 정책을 짜내는 심장과 같은 존재라면 이들은 일선 경제
행정을 집행하는 "모세혈관"에 비유할 수 있다.

민원인들과 맞부딪혀 정책을 검증받는 일은 이들의 몫이다.

경제정책 시행의 최전선에 선 보병인 셈이다.

그런데 이들 말단조직은 요지부동으로 "구태의연"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여전히 힘없는 영세기업인들에게 "손"을 벌린다.

중앙부처에서 아무리 "규제완화"를 외쳐봐야 움직이려 하지도 않는다.

좋게 말해봐야 행정의 용두사미고, 나쁘게 말하면 "날 잡아잡수"하는
철면피행정이다.

"머리따로, 손발따로" 노는 뒤죽박죽 행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정부의 서슬퍼런 사정바람속에서 터져나온 인천 북구청의 조직적인
세금횡령비리는 그러니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도대체 행정의 모세혈관들은 왜 구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구각을 깨도록 할 묘방은 없는 걸까.

해법의 실마리는 병인진단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게다.

일선 하위직 공무원들의 비리가 터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게
쥐꼬리만한 하위공무원들의 봉급이다.

예를 들어보자.

일반직으로 가장 직급이 낮은 9급 1호봉의 경우 본봉이 32만7천원이다.

여기에 연4백%의 상여금과 정액수당 체력단련비등을 합쳐도 연봉은
8백만원을 넘지 못한다.

이것 저것 빼고나면 한달에 평균 손에 쥐는 돈은 50만원 정도다.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은 이렇게 적지만 "마음만 다져 먹으면"
챙길 수 있는 돈은 얼마든지 널려있다.

지역 기업인을 족치는 일은 그중 식은 죽 먹기다.

세무분야는 기본이고 보건위생 건설등 담당 업무마다 "돈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소위 "생계형 비리"의 독버섯은 이런데서 자라난다.

게다가 인사제도도 이런 비리를 부채질한다.

지방관청의 하위직 공무원을 채용하는데는 원칙도 기준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연고에 의해 "임시직"으로 슬그머니 채용됐다가는 몇년 뒤 정식공무원으로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공복의식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정식채용이 아닌 경우 직무를 바꾸지도 못하게 돼있다.

일단 세무보조공무원으로 자리를 잡으면 퇴직때까지 "고인 물"로 남게
된다.

세금횡령으로 구속된 인천 북구청의 직원들 대부분이 "보조원"으로
몇년간 근무하다 9급으로 특채되는 수순을 밟은 사람들이다.

부패하지 않을 수 없게 돼있다.

K시의 창고업 담당 구청직원들이나 완도의 수산물검사소 직원들도 사정은
비슷할 게다.

사람의 몸은 모세혈관까지 골고루 맑은 피가 흘러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관료조직도 마찬가지다.

중병을 앓고 있는 한국의 관료사회엔 "심장수술"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일선조직의 "치료"도 시급하다는 얘기다.

<정리=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