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어려운 일이 벌어져 국민들이 마음둘 곳을 못찾을때 바라보는 곳이
국회다.

국회란 국민의 대의기관이므로 "3권"중에서도 국민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있는 기구이기도 하다.

그런 국회가 사건.사고의 악몽에 가위눌린 국민들을 외면한채 1주일째
공전하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성수대교붕괴와 관련해 지금까지 국회가 한 일이라고는 지난 21일 사고직후
대정부질문을 연기한채 여.야합동 진상조사반을 구성해 현장을 다녀온 것
외에 이원종 전서울시장의 국정감사위증문제를 다루기 위해 건설위원회를
한차례 소집한 것이 고작이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국회가 공전하고 있는 것은 야당인 민주당이 내각
총사퇴와 국정조사권발동을 요구하며 "물러갈 장관들을 상대로 질문은 해서
뭣하겠느냐"는 식으로 본회의 등원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여당인 민자당으로서도 "사고정국"을 수습할만한 카드가 없어
한숨만 내쉬고 있는 형편이다.

민주당은 27일 국회에 내각해임건의안을 제출한다는 방침이므로 국회공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는 책임행정의 실종을 강도 높게 질타하는 야당의 목소리가 어느정도
민심을 대변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당은 즉각 등원해 국회운영을 정상화해야 한다.

책임행정의 추궁은 본회의질문과 상임위활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할수
있다.

물론 국회를 연다고 당장 뾰족한 대책이 나올것도 아니고 돌아선 민심이
쉽게 수습되지도 않겠지만 어쨌든 여.야가 노력하는 자세만이라도 보여주길
기대한다.

대형 사건.사고가 터질때 마다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본질은 제쳐두고
정치공세로 일관하는 것이 새시대의 야당상은 아닐 것이다.

생각을 바꿔야 하기는 여당도 마찬가지다.

민자당은 당장 국회에 정부관계자를 불러 사고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추궁하자는 민주당의 요구를 반대하고 있다.

진상조사반에 맡겨두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반이란 기구자체가 법적 뒷받침을 받지못해 증인채택이나
신문등의 실질적인 활동을 할수 없다.

법적 효력도 없는 진상조사반 대신 특별위원회구성을 검토해 봄직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빈발하고 있는 각종 사고의 근본원인을 따져들어가보면
공사현장의 일꾼에서부터 행정책임을 맡은 공무원과 고위 정치인에게
이르기까지 사회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수 있다.

국가적 중대사가 발생할때마다 차분하게 원인을 규명하고 항구적인 대책을
세워나가야할 책임은 행정부 뿐만아니라 국회에도 있다는 것을 여.야 정치인
모두가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