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크스가 그처럼 산조를 물고 늘어지듯이 집요하게 밀어붙여댄 것은 대만
정벌에 대한 영국측의 우려를 넘어서서 출병 자체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일본과 청나라가 전쟁을 벌이게 되면 동북아세아의 정세가 험악해지고,
두나라와 다 수교를 하고있는 자기네 영국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진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퍼크스 자신의 말마따나 외교적인 수사이고, 실은 대만
이라는 청나라의 주권이 확고히 미치지 않는 흐릿한 영토가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가 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손에 넣은 영국은 그 동쪽 바다에 떠있는 대만
이라는 큰 덩어리를 은근히 속으로 욕심내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네가 군침을 흘리고 있는 먹이를 일본이 먼저 차지해 버릴까 싶어서
배가 아픈 것이었다.

"기어이 일본군이 대만으로 출동한다면 우리 영국은 엄정 중립을
지킬테니 그쯤 아세요" 퍼크스는 결론처럼 말했다.

엄정 중립이란 말 그대로 전혀 간여를 안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간여하겠다는 의사의 표시였다.

일본의 군대에는,특히 해군에는 영국의 손길이 깊숙이 닿아 있었다.

고문관을 비롯해서 교관,각종 기술자 등이 요긴한 자리에 많이 박혀있을
뿐 아니라,대여해 주고있는 함선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각종 신예 무기도 공급해 주고있는 터였다.

엄정 중립이란 그런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겠다는 뜻이니,일본으로서는
당황할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일본군이 해외로 움직이려면 영국을 비롯한 구미 여러 나라의 협력이
없이는 아직은 거의 불가능한 그런 상황이었다.

영국의 퍼크스 공사만이 나선 것은 아니었다.

부임한지 얼마 안되는 미국의 빙검 공사도 사태의 중대함을 깨닫고
놀라서 본국 정부에 보고를 했고,국무성의 지시에 따라 국외중립을
선언했다.

그는 퍼크스처럼 태정대신을 찾은게 아니라, 관례대로 외무경인
데라지마 무네노리를 방문하여 미국의 입장을 설명했다.

역시 표면상 이유는 영국과 다를바 없었다.

일본측에서는 영국의 엄정 중립보다 미국의 국외 중립 통보가 더
타격이 크다고 할수 있었다.

빙검이 새로 부임해 오기 전의 미국공사인 더 롱그는 어떤 판단에서
였는지 일본의 대만 정벌을 은밀히 지원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태정관에서는 외무성 고문으로 있는 미국인 이선득을 대만사무국
출사(이등관에 해당)로 임명하여 도독을 보좌하고 현지인을 다스리며
청나라를 비롯한 여러 외국과의 교섭에 임하도록 하였다.

대만 현지에서의 실질적인 정무를 그에게 맡긴 것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