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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토지'완간 축하모임..김향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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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동안 쉽게 잊혀지지 않는 시간, 감동의 날들을 만난다는 것은
    누구나의 소망일 것이다.

    그러한 시간,그러한 날들은 살아있음이 힘들고 맥빠져 주저앉고 싶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 갈수 있는 힘이 되어 주곤 한다.

    좋은 시간들은 현재만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추억의 일부가
    되어 우리들 삶과 사람들에 대한 든든한 긍정의 힘이 되어 준다.

    사람다운 사람, 사람의 향기가 배어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힘도 바로 그러한 아름다운 시간, 감동의 날들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점점 그러한 시간들을 얻는 것이 몹시 어렵고
    드문 일이 되어버린 듯하다.

    왜 그렇게 바빠야 하는지 잘 헤아려 볼수도 없는채 우리들 모두가 바쁜
    생활의 쳇바퀴에 갇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교통난 때문에 어디 가까운 교외라도 나간다는 일조차 그다지 쉽지
    않은 서울에서의 생활은 사람들로 인한 멀미증에 시달리기 좋은 형편이
    아닌가.

    아파트 차 사무실, 이렇게 밀폐된 공간으로의 이동속에서만 살다보면
    자신들도 모르게 감동은 커녕 작은 규모의 닫힌 사람들 밖에 될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 피곤하다, 재미없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지낸다.

    아이들로부터 나이들수록 심술쟁이처럼 점점 더 화를 잘 낸다는 핀잔을
    자주 듣기도 한다.

    아무래도 매연가스같은 삶의 누적된 고단함과 메마른 실상에 짓눌리고
    있는 때문이리라.

    지난8일 원주의 박경리 선생님댁에선 "토지" 완간을 축하하는 모임이
    열렸었다.

    그날 모임에 참석하러 가는 동안 난 그저 책으로만 만나 왔던 박선생님께
    오랜 독자로서 축하를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박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것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때 문학강연을 위해
    우리 학교에 오셨던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박선생님 책을 거의 모두 빠뜨리지 않고 읽었던 독자였던 내가 시간이
    흘러 문단의 후배가 되긴했어도 만나뵐 기회는 없었던 것이다.

    알다시피 박선생님은 토지집필을 위해 원주에 칩거하고 계셨던 것이다.

    난 그저 박선생님께 내가 쓴 책 몇권을 보내 드렸을 따름이었다.

    글을 쓰지 않는 다른 독자들이 자신들의 주소도 밝히지 않은채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던 그런 마음으로.

    그날 원주의 박선생님댁에 모였던 많은 분들, 평사리 면장님에서부터
    학계의 원로 선생님, 그리고 재계의 총수며 원주시장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한결같은 마음들이었으리라.

    26년이란 긴 세월동안 오직 토지를 써 왔던 박선생님의 그 수도승같은
    삶에 깊은 축하를 드리고 싶다는..

    잔치가 끝난뒤, 혹시 박선생님에게 다가 올지도 모를 공허함을 염려하시던
    박완서선생의 말씀과 이처럼 큰 축하를 받을만한 일을 한적이 없는데 너무
    큰 축하를 받게 되어 당황할 뿐이라던 박선생님의 말씀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박선생님의 오랜 수고와 정성으로 가꾼 나무들이 잘 어우러졌던 넓은 뜰은
    또 얼마나 박선생님의 정신과 닮았던가.

    그 뜰에 앉아 있는 동안 난 원주시 단구동이라는 지명과 관계없는 어떤
    아득한 장소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토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영혼이 넘나들기 위해서는 박선생님댁의
    그 뜰이 꼭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말이 26년이지 한사람의 작가가 그 긴 세월동안 그 한 작품을 만들어 가기
    위해 전력투구했던 그 고행의 시간을 생각하노라면 문학이 무엇이며,
    예술혼이란 또 무엇일까를 다시 한번 되묻지 않을 수 없었던 시간이
    아니었던가.

    그날 원주 박선생님댁에서의 축하모임은 단순한 축하의 자리가 아닌,
    치열하기 그지없는 한 예술혼에 바쳐진 가슴벅찬 감동의 시간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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