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 서평위원회 선정
저자 : 한스 요하임마즈

이책은 동독시민이 분단상황하에서, 그리고 통일과정과 통일후에 겪는
슬픈 이야기이다.

이야기라고 하지만 한 정신분석학자의 체험적 고백의 형식을 빌린 아주
심각한 사회과학적 분석이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이 책은 동독 시민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독인의
이야기이며 어쩌면 우리가 모른채 지내오고 있는 우리자신의 현실을
놀랍게도 정확하게, 그리고 전율할 정도로 직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가슴 서늘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1,2장에서 감옥으로서의 국가 도덕 학교 가정등 파시스트 국가의
모든 교묘하고 합법적인 억압의 장치들이 시민들의 인간성을 어떻게
짓누르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3,4장에서 특히 4장은 바로 그들을 겹겹이 차단해 왔던 장벽들이 허물어지
는 과정과 감정을 거부당하고 스스로 감정을 포기하도록 순치되었던 사람들
이 어떤 심리적 충격과 적응을 하게 되는지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5장에서는 분단이 마침내 통일로 바뀌어지면서 이전의 전혀 달랐던 두
체제, 두 이데올로기, 두 세계가 순간적으로 확인되는 인간성을 바탕으로
합쳐진다.

동독인은 자신의 이념적 도덕적 우월감이 새로운 세계앞에서 비참한
패배와 열등감, 그리고 앞으로 어떤 적응력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불안감과
좌절감으로 분열된다.

그러나 분열증은 서독인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그들은 동독인이 이념과 폭력의 공포앞에 결핍증에 빠져있었던
것만큼 그들 자신은 마약처럼 주어지는 유행과 물질적 풍요와 그들의 체제에
순종하게 하는 또하나의 억압앞에서 자아상실을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독일인 즉 동독과 서독인 모두는 현재의 슬픈 이야기를 만들었던 슬픔의
정체를 용감히, 그리고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채 교묘히 외면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6,7장에서는 이러한 슬픈 이야기는 결국 그들 스스로가 만들었으며 각자의
특유한 방식으로 자신을 억압하는 공포의 힘앞에 가학적 순응을 통하여
안주하려 했던데에서 만들어졌음을 자기분석을 통해 고발한다.

이 책은 국가의 이념적 억압과 폭력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사기를
당하며 불쌍하게 파괴되는가, 그리고 분단의 슬픔과 통일의 혼란스런 아픔을
정신의 심연으로부터 파헤치고 있다.

인간의 이러한 측면에 대한 이해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간에 하나의
세계관에서 또 하나의 세계관으로의 전이속에서 인간내면적 심리와 외양적
행위를 파악하려는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자들에게 아주 필요한
것이다.

이책은 허튼 사랑이야기에 식상하여 조금이나마 진지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자기를 찾는 거울로써 권하는 읽을거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송동준 역 민음사 간 315면 7천원)

김광억 < 서울대교수 사회인류학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