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품위있는 삶을 동경한다.

하지만 실제로 품위있는 삶을 사는 이는 흔치 않다.

돌아가신 서양화가 도상봉선생님(1902~1977)의 담백하고 흐트러짐 없던
생활태도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1976년 일본도쿄에서 한일교류전이 열렸을때 일본의 미술평론가들은
도선생님의 그림을 가르켜 한결같이 격조높고 품위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도선생님은 둥근 백자항아리와 라일락꽃을 즐겨 그렸는데 실제생활에서
역시 백자항아리만큼 격조높고 라일락꽃만큼 향기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선생님의 작품에서 품위가 느껴지는 것은 그분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
이다.

생시의 그분은 위채도 당당했지만 행동에서도 한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선생님의 화실은 집옆에 따로 지은 5평남짓한 조그마한 것이었는데 50년
월남해 지은 것을 그대로 돌아가실 때까지 쓰셨다.

매일 새벽5시면 일어나서 목욕하고 4~5시간씩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과였는데 추운겨울 화실의 난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도 작업을
거르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추워도 그림을 그릴 땐 옷을 항상 가볍게 입으셨다.

70년대에 들어 그림이 팔리기 시작, 생활에 여유가 생긴 후에도 그림을
그리지 않는 화가는 화가가 아니라며 생활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점심때쯤이면 명륜동집에서 걸어서 인사동 화랑으로 나오시곤 했는데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도 자동차를 사지 않았다.

타계 1년전쯤 디스크로 자리에 눕게 되었을 때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누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끔찍히 사랑하던 손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지존파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한 요즈음 새삼 도선생님이 그리운 것은
우리사회에 선생님처럼 경제적인 여유에 동요되지 않고 부를 과시하는 일
없이 시종 성실하고 검소한 태도로 삶의 품위를 유지하는 이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