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자유화시대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금융상품으로 태어난 FRN(변동금
리부채권)이 첫 발행부터 뒤뚱거리고 있다. 치워야 할 걸림돌이 많고 경우
에 따라선 놓아야 할 디딤돌도 적지않기 때문이다.

지난 12일과 17일 두차례에 걸쳐 발행된 삼성전자 금성사 한솔제지 제일
합섬 삼성건설등 5개사의 FRN은 대부분 덤팽매출이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
로 가격을 깍아줘야 했다.발행물량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도 많았다.
자연히 ''변동금리''라는 측면에서 매력을 느껴 FRN을 검토중이던 중견기업
들이 주춤거리고 있다. 상당수업체는 발행자체를 연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요인은 여러가지다. 우선 FRN의 공급기관만 있었지
수요기관이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부가 10개사에 3천1백90억원규모
의 FRN 허용했으나 은행 투자신탁등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FRN을 사들일 준
비태세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들이 FRN을 매입하려면 이를 편입시킬 상품이 있어야 하나 현재로선 마
땅한 상품이 없는 상태다.

유통시자이 형성되지 않아 환금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FRN
은 3개월마다 이자를 확정, 계산해 준다는 점에서 CD(양도성예금증서)와
직접적인 경쟁상품이다.

그러나 CD는 현금이 필요할 때 항상 시자에 내다팔 수 있다. FRN은 아직
환금성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이 FRN의 불투명한 환금성을 금리로 보상받으려는 것
은 당연하다. 기준금리(CD금리)에 덧붙여주는 가산금리를 0.3~0.5%포인트
까지 요구할 정도다. 기업들에 우선 발행성공(FRN의 소화)을 위해 금리를
올려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회사는 표면금리에 0.25~0.3%포인
트를 더 얹어 팔았다. 덤핑판매라고 할 수 있다.

FRN의 기준금리가 불안정한 것도 발행을 기피하게 된 또다른 요인이다.
FRN의 기준금리는 CD에 연동되고 있는데 이 CD금리가 실세금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

국내 CD시장의 취약성때문에 일시적인 매물증가로 CD금리가 급등하면 FRN
의 지급이자가 갑자기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채권 발행시자에서 기업들이 아직 선의의 경쟁을 못하는 것도 FRN시장의
활성화를 어렵게하고 있다. 지금까지 FRN을 발행한 5개사는 해외에서 기채
할 경우 발행수익률이 어느정도 차별화되는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그러
나 국내에서 발행 수익률 차별화를 마다한다. 기업이미지등 ''자존심'' 싸움
때문에 경쟁사보다 높은 금리로 발행하기를 죽기보다도 싫어한다. 5개사
모두가 CD금리에 0.1%포인트를 가산한 똑같은 금리로 FRN을 시장에 내놓은
게 이를 반증한다.발행기업 스스로가 소화의 어려움을 자초했다는 풀이다.
자업자득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이번에 발행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타이밍상의 문제도 있다. 금리상승기
조에 발행했으니 말이다. 수요자 입장에서 보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고금
리의 상품을 그것도 고정금리로 매입할 수 있는데 굳이 금리가 낮을때 변
동금리상품을 살 이유가 없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FRN의 안착시도는 일단 실패했다.

''실패원인'' 하나 하나의 책임을 묻자면 대부분 정책당국쪽으로 화살이 돌
려진다. 사전에 충분한 검증없이 졸속으로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FRN은 기업들의 금리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고 금리자유화를 정착
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사후적이긴 하지만 약방문을 써야하
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FRN 편입상품 개발이라는 ''약재''가 필요한 것 같다.

<육동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