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권 <한국신발연 소장>

지난4월 50년 역사의 "태화"가 국내공장가동을 멈춘후 이번에는 국내
최대 신발메이커인 "화승"그룹마저 국내생산 전면중단을 선언함으로써
신발산업을 지켜보는 많은이들을 더없이 안타깝게 하고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신발산업은 73년 1억달러 수출달성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90년에는 세계 신발시장의 약20%를 석권하는 경이적인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80년대말을 전후해 임금과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원화절상
등의 여파로 생산원가가 급등함으로써 90년을 정점으로 매년 수출액이
20%이상 감소하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발산업의 침체는 그동안 우리 신발산업이 안고 있던
구조적인 문제점을 감안한다면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신발산업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그 하나는 산업자체가 대표적 노동집약형 산업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경쟁국에 비해 임금이 높은 나라에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어 그 기반붕괴
가 불가피하다는 "사양산업론"과 제조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자체브랜드를
창출, 고기능성 패션제품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한다면 반드시 회생가능
하다는 "전략산업론"이다.

이러한 두가지 견해중 사양산업론은 나름대로 현실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나 자칫 대안없는 논리의 비약으로 국민경제에 혼란을 초래할수 있는
위험이 있다.

또한 높은 임금과 노동집약산업이기 때문에 사양화될수 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은 우리보다 임금이 3배이상 높은 이탈리아가 신발에서,그리고
전통적 노동집약산업인 모직물분야에서 선진국 영국이 세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앞에서 그 논리의 근거를 잃는다.

따라서 우리는 신발산업은 반드시 회생가능하다는 "전략산업론"을 전제로
신발산업 재도약을 위한 논의를 전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신발산업의 발전과정속에 나타난 몇가지 문제점을 짚어본다.

첫째, 한국의 신발산업은 70년대 수출드라이브정책과 맞물리면서 당장의
성과달성에 급급한 나머지 대량생산위주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수출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이러한 OEM 수출방식은 초기 기술과 마케팅능력이 부족했던 우리에게
고도성장의 발전을 마련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발산업의
기반을 약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우선 국제하청식 생산방식으로 인해 수출 3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에서 우리 나름의 자생력을 갖출수 없었고 임금및 원자재등의
생산비 상승요인을 수출가격에 반영할수 없어 채산성악화의 위험을
언제나 내재하게 되었다.

또한 대기업 중심의 대량생산체제는 오늘날과 같이 날로 복잡해지고
급변하는 소비자들의 수요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할수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우리는 수출상승으로 호기를 누리던 지난80년대
에 이미 자체브랜드 창출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였으나 OEM이라는 기존의 묵은 껍질속에 안주함으로써 우리의
독자적 시장확보에 실패하였다.

둘째로는 87년말부터 급격히 상승한 인건비를 피해 생산기지를 대량으로
해외로 이전시킨 신발업계의 과오를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86년 이전까지 불과 2개업체 8개라인에 불과하던 해외진출은 94년4월
현재 34개업체 1백6개 라인으로 증가하였으며 이는 국내 가동라인의
30%에 육박하는 큰 규모다.

마지막으로 디자인및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부족이다.

현재 세계 제1의 신발수출국인 이탈리아가 일찍이 30여개의 신발연구및
교육기관을 두고 신발전반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와 교육으로 고부가가치
신발생산에 주력했던 반면 우리는 시설확충에 의한 양적인 성장에만
투자를 집중해 핵심기술습득에 실패하고 유휴시설만 늘려 놓았다.

특히 신발과 같이 Life-Cycle 이 짧은 패션 소비재의 경우 유행을 선도
하는 창조적 디자인개발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나 우리는 신발디자인에
관한한 아직 걸음마단계의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신발산업은 앞으로 3~4년안에 산업의 존폐가 판가름날 것이라는게
신발업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정책의 드라이브를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는 비단
정책당국자 뿐만아니라 신발산업 관계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체 브랜드육성의 당위성과 OEM체제 유지의 현실성은 각기 다른 방향
으로 달리는 두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딜레마에 놓이게 한다.

그러나 지난 몇년간 여러가지 어려움속에서도 고무적인 성과를 거둔
몇몇업체들이 있다.

이들은 대개 두가지 유형으로 그 하나는 자체브랜드를 가지고 고기능성
패션신발을 개발하여 남미 유럽등 틈새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경우와
또다른 하나는 OEM의 생산방식을 취하되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생산관리
개선으로 원가절감에 성공한 기업들이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두가지 유형 모두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를
갖추고 이른바 유연생산시스템( Flexible Manufacturing System)을 통해
능동적으로 수요변화에 대처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같은 도전적이며 혁신적인 기업들에서 미래 신발산업의
나아갈 방향을 찾을수 있다.

즉 이미 생성된 자체브랜드는 정책적으로 지원하되 시장다변화를 추진
하고 당장 자체브랜드 전환이 어려운 업체에 대해서는 과감한 생산구조
개편과 과학적 생산관리로 경쟁력을 제고하여 그 열매를 자체상표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핵심부품 및 소재개발,디자인과 마케팅능력 배양등 자체상표 창출을 위한
산적된 당면과제를 업계와 정부,그리고 연구소가 어떻게 중지를 모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신발산업의 흥망이 달려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