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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경제관료] (47) 제4편 빛과 그늘 (12) 예비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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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를 정(정), 아래 하(하)"

    작년 11월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의 행시 36회 수습사무관 교육 마지막날,
    강당 흑판의 "재무부"밑에 써진 "글자"다.

    무슨 한자교육 시간이 아니었다.

    "예비관료"들이 앞으로 몸담을 근무희망부처를 한명씩 나와서 흑판에 적어
    넣는 시간이었다.

    연수성적순으로 한명씩 직접 흑판에 희망부처를 표시하도록 하자 상위
    8명이 차례로 재무부 지원란에 한 획씩을 그어나간 것.

    재무부의 "티오"는 8명.

    순식간에 정원이 채워지자 9등을 한 사무관은 주저없이 "상공자원부"밑에
    한 일(일)자를 써넣는다.

    상공자원부 모집이 끝나자 다음 번엔 국세청, 그 다음엔 경제기획원.

    "행정부 동량"들의 부처배치는 이렇게 이뤄진다.

    철저히 성적순이다.

    마치 학력고사 성적에 따라 대학의 "서열"이 정해지듯 수습사무관들에게도
    "부처 서열"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얘기다.

    행정고시가 재경 일반 교육등으로 세분화된 이래 재경직 대상부처의 이같은
    "서열"은 부동이다.

    재무부->상공자원부->국세청->경제기획원->건설부->과학기술처->관세청->
    농림수산부->조달청->통계청의 순으로 말이다.

    92년에 모처럼 "3등"과 "4등"이 뒤바뀌기는 했지만 작년에 다시 "원상
    복귀"됐다.

    마치 "인기 랭킹"을 방불케하는 이같은 수습사무관들의 "희망부처 서열"은
    어떤 잣대로 정해지는 걸까.

    대학이 "졸업후의 취직자리"를 감안해 서열이 결정된다면 경제부처에서는
    "끗발"이 중요 잣대가 되더라는게 교육담당자들의 "경험담"이다.

    상황이 조금 여의치않게 됐다고는 해도 "재무부는 금융계를, 상공자원부는
    제조업계를, 국세청은 납세자를" 주무르며 누리게되는 "끗발"이 수습연수를
    마치는 예비관료들의 "구미"를 당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시경제계획 수립같은 "뜬구름 잡는 일"만 다루는 경제기획원이 인기순위
    에서 밀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게다.

    "교육중 토론회를 할 때 보면 모두가 그렇게 순수할 수가 없다. 누구나가
    국가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 고시에 응시했다고 한다. 하나같이 애국자같다.
    그러나 막상 희망부처를 지원하는 시간이 되면 얘기는 달라지고 만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이중성이 이때부터 나타난다"(경제기획원 L사무관)
    는 지적이다.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도 이런 "잿밥"과 예비관료들간의 함수
    관계는 부처에 배치받고 나서 더욱 구체화된다.

    "재무부 발령을 받은 초기에는 선배들의 지나친 행정편의적 규제관행에
    회의가 많았다. 그러나 업무시스템 자체가 ''규제행정''으로 돼있는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선배들의 업무처리 노하우를 어깨넘어 배우는 수 밖에
    없음을 절감하게 됐다. 요즘은 어떻게 금융계를 ''조져야'' 일이 수월해지는
    가를 하나씩 터득해 나가고 있다"(재무부 C사무관)는 고백도 나온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예비관료들이 정식교육보다는 일종의 "도제훈련"을
    통해 "구태"를 전수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수습사무관들의 부처선호도는 국세청 지원자들의 경우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대부분 군대에 다녀왔거나 뒤늦게 고시준비에 뛰어든 "고령자"들이 국세청
    지원자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대학재학중에 고시에 합격한 젊은 동기생들보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맛본 이들일 수록 명분보다는 "실속"을 챙기게 되는데 따른 현상아니겠냐는
    게 교육원측의 분석이다.

    물론 "늦게 출발하는 마당에 똑똑하고 나이어린 동료들과 재무부나
    상공자원부같은 정책부처에서 경쟁하기는 버거운 것 아닌가. 집행기관에서
    나이에 걸맞게 부하직원도 거느리고 충실히 공무원생활을 하겠다는 현실적
    선택으로 봐주어야 한다"(국세청 H사무관)는 반론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러나 "물좋다는 상공부"에 지원했다가 "정부내 전직"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는 2년차 K사무관의 경우는 대다수 예비관료들이 좇는 "잿밥"이 한낱
    "신기루"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K사무관은 요즘 D데이를 앞둔 전투군인처럼 매일 달력의 날짜를 지워
    나간다.

    "상공자원부는 희망이 없다. 차라리 고향에 내려가 내무관료를 하면서
    지방의회나 자치단체장 선거를 준비하는 쪽으로 인생항로를 바꿨다"는 그는
    3년간의 "의무복무기간"이 채워지기를 달력날짜를 지워가며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예비관료들에 대한 수습교육과정에서 각 경제부처가 어떤
    "염불"을 외우는가, 곧 어떤 업무를 다루는가에 대한 적확한 홍보와 교육이
    결여된데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다.

    "염불"을 모르니 "잿밥"에 이끌리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상공자원부
    P사무관)는 얘기다.

    물론 모든 예비관료들이 이런 "신기루"만을 좇는 건 아니다.

    지난달 각 부처별로 수습사무관들의 정식 사무관발령과 동시에 이뤄진
    보직인사때 상공자원부의 "능력있는" 상당수 사무관들이 "먹을 떡이 없는
    3D부서"로 선배들의 기피대상인 통상관련 부서에 지원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문제는 예비관료들 개개인의 소양과 자질을 감안한 "적소적재"의 부서배치
    가 아니라 "성적순 선착순"식의 안일한 "자대배치"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이 강구되지 않는 한 올11월의 행시37회
    배치때도 "재무부->상공자원부->국세청->경제기획원"은 부동일 수 밖에
    없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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