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18) 기아자동차 (상)..책임 다하는 가족주의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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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입니다. 여러분의 어깨에 모든 것이 달려있습니다"
지난8월4일 기아자동차 여의도 본사10층 대강당. 창사이래 최대규모의
조직개편과 임원인사가 단행됐다. 사령식의 분위기는 김선홍회장의 낮은
어조만큼이나 무겁기만 했다.
이날 조직개편의 핵심은 임원들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했다는 것.
차종별로 조직을 나눠 개발 생산 판매로 이어지는 모든 모든 책임을
담당임원이 지도록 했다. 매출 5조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지금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로는 더이상의 발전을 기대할수 없다는 김회장의
단안이었다.
업계에서는 기아의 경영스타일을 가족주의로 표현해 왔다. 회사가 커온
지난50년동안 임원들의 웬만한 잘못은 덮어줘 왔다.
그러다보니 조직규모가 커진 현재 생산은 물론 판매에서도 누수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날 조직개편은 이같은 누수현상을 막아 새로운 50년을
건강하게 맞겠다는 시도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조직개편은 온정주의를 털어버리겠다는 것일뿐 여전히
가족주의는 기아의 최대강점이다. 한번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는 기아를
지금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것도 역시 가족주의 덕이다.
"나는 오늘 여러분을 설득하기 위해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다. 집에
아들이 "저는 지금까지 기아산업의 월급으로 자라고 공부도 했는데 끝내
회사의 간판이 내려진다면 앞으로 저는 커서 뭐라고 말해야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이말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망한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부도위기로 종업원들에게 월급조차 주지못한 김선홍당시사장이 소하리
공장의 종업원들에게 읍소한 내용이다. 끈끈한 가족애는 이연설 한마디로
공장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게 했다.
이듬해 2.28자동차산업합리화에 따른 동아자동차와의 합병위기, 쌍룡에
대한 주식매각 위기등을 슬기롭게 헤쳐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수
있다.
그때 구사운동의 핵심이었던 고참부장 참여(이사대우)급들이 현재 회사의
핵심중역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삼성그룹의 기아주식매집사건이 조기에 진화될수 있었던 것도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뎌온 임원들의 기민한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는 기아의 임원들이 느슨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기아 임원들의
결집력은 다른 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회장이 그렇듯 내부적인 경쟁이 있겠지만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최고
경영자가 될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한계를 그어놓고 오너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다른 대기업의 임원들과는 근본적인 역할 차이가 있다.
회의분위기에서 그같은 차이를 발견할수 있다. 기아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회의는 매주 화요일 열리는 본부장회의이다.
김회장 한승준사장을 비롯한 본부장들이 참석하는 이회의에서는 간혹
고성까지 오간다. 오너 회장이 있는 다른 기업의 회의가 대개 보고와
지시로 끝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아의 중요한 결정사항은 이같은 격론을 통한 수렴과정을 거친다.
때로는 의사결정이 늦어질때도 있지만 결정이 되면 군소리가 없다.
그러나 회의의 아이디어나 결정과정의 흐름은 김회장이 잡고 있다. 물
흐르듯한 경영스타일의 김회장은 비오너 회장으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임원들의 존경대상이다.
김회장은 메모를 좋아한다. 임원에 대한 모든 지시사항은 메모로 전달
된다. "김회장 없는 기아는 생각할수 없다"는 임원들은 이메모를 공책에
붙여가며 김회장의 지시를 꼭 해내고 만다.
김회장의 특징은 누구보다 현장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일요일에도 골프가
끝나면 영업현장이나 연구소를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다.
회장실 책상에도 항상 부품을 늘어놓고 들여다보는 "자동차박사"인 탓에
연구소직원들은 일요일에도 회장이 나와 한마디 조언을 해주길 기다린다.
과장급 정도까지는 웬만하면 이름을 기억해 "김군, 이군"하며 다정히
불러주는 회장을 이들은 좋아한다.
직원들은 그가 최고경영자자리에 오른데 대해 구태여 "봉고신화"등의
업적을 이야기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입지는 강하다.
그의 뒤를 떠받치는 사람이 한승준사장. "리어커 자전거 영업사원"이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그는 회사생활 30년간 오로지 영업의
한우물만을 파왔다.
"경영은 실천이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해오고 있는 그는 지금도 월요일은
소하리공장, 수요일은 아산만공장에서 근무할 정도로 현장을 챙긴다.
공장장은 항상 생산현장에 있어야 한다며 두공장장의 책상을 없앤 것도
그의 철저한 현장주의에서 나온 발상이다.
현실주의적이고 효율을 좋아하는 타입으로 약간은 이상주의적인 김회장과
조화를 이룬다.
지난8월4일 기아자동차 여의도 본사10층 대강당. 창사이래 최대규모의
조직개편과 임원인사가 단행됐다. 사령식의 분위기는 김선홍회장의 낮은
어조만큼이나 무겁기만 했다.
이날 조직개편의 핵심은 임원들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했다는 것.
차종별로 조직을 나눠 개발 생산 판매로 이어지는 모든 모든 책임을
담당임원이 지도록 했다. 매출 5조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지금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로는 더이상의 발전을 기대할수 없다는 김회장의
단안이었다.
업계에서는 기아의 경영스타일을 가족주의로 표현해 왔다. 회사가 커온
지난50년동안 임원들의 웬만한 잘못은 덮어줘 왔다.
그러다보니 조직규모가 커진 현재 생산은 물론 판매에서도 누수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날 조직개편은 이같은 누수현상을 막아 새로운 50년을
건강하게 맞겠다는 시도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조직개편은 온정주의를 털어버리겠다는 것일뿐 여전히
가족주의는 기아의 최대강점이다. 한번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는 기아를
지금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것도 역시 가족주의 덕이다.
"나는 오늘 여러분을 설득하기 위해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다. 집에
아들이 "저는 지금까지 기아산업의 월급으로 자라고 공부도 했는데 끝내
회사의 간판이 내려진다면 앞으로 저는 커서 뭐라고 말해야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이말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망한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부도위기로 종업원들에게 월급조차 주지못한 김선홍당시사장이 소하리
공장의 종업원들에게 읍소한 내용이다. 끈끈한 가족애는 이연설 한마디로
공장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게 했다.
이듬해 2.28자동차산업합리화에 따른 동아자동차와의 합병위기, 쌍룡에
대한 주식매각 위기등을 슬기롭게 헤쳐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수
있다.
그때 구사운동의 핵심이었던 고참부장 참여(이사대우)급들이 현재 회사의
핵심중역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삼성그룹의 기아주식매집사건이 조기에 진화될수 있었던 것도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뎌온 임원들의 기민한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는 기아의 임원들이 느슨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기아 임원들의
결집력은 다른 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회장이 그렇듯 내부적인 경쟁이 있겠지만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최고
경영자가 될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한계를 그어놓고 오너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다른 대기업의 임원들과는 근본적인 역할 차이가 있다.
회의분위기에서 그같은 차이를 발견할수 있다. 기아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회의는 매주 화요일 열리는 본부장회의이다.
김회장 한승준사장을 비롯한 본부장들이 참석하는 이회의에서는 간혹
고성까지 오간다. 오너 회장이 있는 다른 기업의 회의가 대개 보고와
지시로 끝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아의 중요한 결정사항은 이같은 격론을 통한 수렴과정을 거친다.
때로는 의사결정이 늦어질때도 있지만 결정이 되면 군소리가 없다.
그러나 회의의 아이디어나 결정과정의 흐름은 김회장이 잡고 있다. 물
흐르듯한 경영스타일의 김회장은 비오너 회장으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임원들의 존경대상이다.
김회장은 메모를 좋아한다. 임원에 대한 모든 지시사항은 메모로 전달
된다. "김회장 없는 기아는 생각할수 없다"는 임원들은 이메모를 공책에
붙여가며 김회장의 지시를 꼭 해내고 만다.
김회장의 특징은 누구보다 현장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일요일에도 골프가
끝나면 영업현장이나 연구소를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다.
회장실 책상에도 항상 부품을 늘어놓고 들여다보는 "자동차박사"인 탓에
연구소직원들은 일요일에도 회장이 나와 한마디 조언을 해주길 기다린다.
과장급 정도까지는 웬만하면 이름을 기억해 "김군, 이군"하며 다정히
불러주는 회장을 이들은 좋아한다.
직원들은 그가 최고경영자자리에 오른데 대해 구태여 "봉고신화"등의
업적을 이야기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입지는 강하다.
그의 뒤를 떠받치는 사람이 한승준사장. "리어커 자전거 영업사원"이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그는 회사생활 30년간 오로지 영업의
한우물만을 파왔다.
"경영은 실천이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해오고 있는 그는 지금도 월요일은
소하리공장, 수요일은 아산만공장에서 근무할 정도로 현장을 챙긴다.
공장장은 항상 생산현장에 있어야 한다며 두공장장의 책상을 없앤 것도
그의 철저한 현장주의에서 나온 발상이다.
현실주의적이고 효율을 좋아하는 타입으로 약간은 이상주의적인 김회장과
조화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