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에서 외교정책의 결정요인에 관해 정치학적인 분석을 시도한
전문서적들은 많다. 물론 거기에는 정치라는 복합적인 현상을 구성하고
있는 세부요인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제현상에 대한 이해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제 좀더 미시적인 시각으로 국제사회의 정책
결정에 있어서 이미 실제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에너지전문가 직업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과학기술은 국가간
관계에 영향을 미칠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미래문제를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일단 외적으로는 일반적인 관점
에서 보더라도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같다.

문제는 그러한 공감의 내용이다. 국가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과학의
수준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과학의 어떤 의미가 외교정책의
결정요인으로서 개입한다고 알고 있는가. 사실 그것은 한 나라 군사력의
무기체계와도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정책결정에 관계하는 이들에게는 국가안보적 측면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요즘 논란을 빚고 있는 핵문제가 그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협상의 담당자는 핵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합리적이고도 현실적인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대를 압도하는 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협상 자체를 리드하는 것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반대로 협상담당자가 그러한 지식과 정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불필요한 명분싸움 때문에 정작 유용한 현실적 결과를 이끌어내는데
실패, 궁극적으로 국민들을 불안에 휩싸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20년간 에너지산업 전문가로서,또 20년간 외교관으로서 생활했던
경험을 살려 과학과 외교라는 멀고도 가까운 두 개념을 일반인들이 이해
하기 쉽게 접목시키고 있다.

그는 일본의 제네바 군축대표부 대사로서 군축회담에 참여했고 산유국인
쿠웨이트와 멕시코의 대사로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 책의 다양한
예들은 그의 직접경험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급의 정보들은 그의 글을 그저
그런 외교관의 체험기쯤으로 대하려는 독자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모두 16개장으로 구성돼있는 이 책은 내용적으로 크게 세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먼저 우리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한 핵문제에 관한 접근이다. 저자는 이
문제에 관해 낙관적 입장을 견지한다. 무엇보다 핵은 활용하기에는 그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문제점을 지니는데 국제사회는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 한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북한핵문제에 관한
논의가 빈약하다는 점이다. 그는 문제제기를 했을뿐 나름의 객관적
분석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또 에너지문제에 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에너지는 석유든 원자력
이든 언제라도 무기화가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늘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원자력의 경우는 그 현실적 폐해에 대한 인식때문에 사정이
전같지 않다. "탈원자력현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국제적 변화가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총체적 과학기술력에 대한 접근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일본은
한때 과학기술이라면 자신들이 최고라는 착각을 했다. 그러나 규모있는
첨단기술에 있어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미국이 세계를 리드하고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몇몇 문제들을 중심으로 국제정치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실제적 의미를 드러내 보이려 했다.

합리적 군축,환경문제,자원문제등에 대한 보다 원론적 논의와 협력은
오늘의 국제사회에 남겨진 실천적 과제일 것이다. (94년 중앙공론사간
2백43면 7백40엔)

손 풍 삼 <국제사회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