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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다도의 거봉인 센소시쓰박사. 다도의 명문 우라센케의 15대 종손으로
''다도의 국제화''를 이룩한 인물이다.

그만큼 현대 다도는 그를 빼놓고는 말할수 없을 정도로 비중이 크다. 그가
운영하는 교토의 우라센케센터는 다도를 견학하려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언제나 북적거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도에 매료돼 세계각지에서 ''다도유학생''이 밀려들고
있다. 교토는 이제 다도문화의 수출중심지로 자리잡은 것이다.

현재 일본의 다도는 일본기업들의 해외기업활동을 측면지원해 주는 역할
까지 하고 있다. 그만큼 좋은 이미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차한잔으로부터 세계평화''라는 다도정신구현을 위해 센소시쓰박사는 근
50년간 세계를 누비고 다니고 있다.

민간문화사절로서 해외출장 160회, 50여개국과의 교류기록을 세운 ''국제적
마당발''이 됐다.

그의 우라센케재단은 세계 19개국에 사무소를 둘만큼 세계적 네트워크를
갖게 됐다.

올해는 ''평안건도 1200년기념협회'' 이사장직까지 맡아 눈코뜰새가 없는
센소시쓰박사를 교토우라센케센터로 찾아가 만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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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도는 어떻게 형성됐나.

"다는 원래 중국에서 약용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12세기께 중국에서는
승려들이 수도와 참선을 돕기위한 자극제로 즐겨 마셨으며 약용으로 보급
됐다.

당시 중국에 유학간 일본의 선승들이 귀국할때 일본에 가져왔다. 이런 차가
새로운 미학으로 승화되고 일본문화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게 된데는 센리큐
라는 인물의 공이 컸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15대선조이다. 구체적으로는 1522~1591년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예술과 철학 정치에 탁월한 사상가였다. 그는 다도의 미학을 하나의
생활규범으로 정착시켰다"

-왜 그 당시 일본사회에 다도가 그처럼 유행할수 있었나.

"차는 초록색이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곧 자연과 함께있는 것이다.
차앞에서는 지위고하나,귀천이 있을수 없다. 모두가 평등하다. 따라서
다실에 들어오려면 전국시대의 장군이라할지라도 칼을 밖에 놓고 좁은
문으로 들어와야 했다. 차를 앞에두고는 다툼이 있을수 없다. 주인과
객의 구별이 있을수 없으며 모두가 마음이 하나로 될수 있다. 즉
"차한잔의 평화"를 만드는 의식이 다도의 매력이다. 전국시대의 다도는
교육및 교양을 나타내는 척도였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도쿄대
와세다대등으로 교육수준을 평가할수 있는 교육기관이 없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인격도야및 교양을 높이기 위해 다도를 행했다" -다도의
본질이랄까 가장 중요시 하는 사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화경청적" 4자로 압축할수 있다. 화란 조화를 의미한다.
사람과 사람의 조화,사람과 자연의 조화,차도구와 그것을 다루는 법의
조화를 가리킨다. 경이란 글자그대로 존경심을 갖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을 존중하고,자연을 존중하고 삼라만상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다.
존경심이 없으면 평화가 유지될수 없다. 청은 청결,순결을 가리킨다.
마음과 몸 물질의 청정이다. 적은 앞서 말한 화경청이 이뤄지면 얻게되는
마음의 평화를 일컫는다. 이러한 사상은 모두 센리큐에 의해 확립된
것이다" -결국 일본의 다도는 불가의 선과 직결되는게 아닌가.
"다도에는 비단 불교뿐 아니라 도교 유교의 정신도 융합돼 있다. 이
세가지가 융합돼 다도가 됐다고 이해하면 된다. 다도의 도란 인간이
지켜야할 "인륜도덕"의 길이다. 이는 신앙심만으로는 안된다. 자기의
마음을 트레이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자신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청소를 해야한다" -일본의 전국시대엔 무사도라는 것도
횡행했었는데 평화를 이상으로 하는 다도와의 대립은 없었는가.
"무사들에게는 무사로서의 이상형을 추구하는 무사도가 있기는 했지만
다도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신분고하 종교 직업이 무엇이든 인륜도덕을
강조하는 점에서 대립관계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도는 누구든지
포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의 무장이었던 오다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다도를 즐겼다. 그들은 모두 일본다도의 창시자인 센리큐의
제자들이었다. 센리큐는 그들과 차를 같이 하면서 피를 흘리는 전쟁을
하지말고 평화를 추구하도록 설득했다. 일종의 상담역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센리큐는 조선정벌(임진왜란)을 하려는 도요토미히데요시에게
전쟁을 일으키지 말도록 설득하다가 미움을 사 할복자살을 명령받았다.
이는 당시 정신적인 지도자였던 센리큐에 대한 일종의 질투라고 할수 있다"
-현대문명과 다도와의 관계는.
"현대는 너무 물질문명에 오염돼 있다.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다.
오만에 빠져있다. 버블(거품)경기라는 것도 그러한 산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라는 것은 단지 하나의 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차한잔을
두고 "먼저 드시지요","그럼 제가 먼저."라며 존경과 양보를 하는 "의식"은
다도이외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다도는 하나의
철학,그중에서도 실천철학이라 할수 있다. 즉 옛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온고지신"을 할수 있는게 현대의 다도라 할수 있다. 나 자신도
인륜도덕의 도,다도문화의 학,실천의 실이라는 3요소의 체득을 강조하고
있다.
편의주의 기계화에 오염된 현대인들에게는 한잔의 차를 끓여 마시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무의미하게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일정한 법도에
의해 마련된 한잔의 차는 현대인의 내적 갈증을 풀어주는 꿀이 될 것이다"
-일본의 다도는 지나치게 형식적인 절차에 치중하는 감이 있다.
"그렇지 않다. 스포츠를 예로 들어보자. 축구 배구 야구 농구등 어떤
스포츠든지 룰이 있게 마련이다. 마작 카드 골프도 룰이 있기
때문에재미있는 것이다. 룰없이 모두 제멋대로 한다면 그런 것들이
성립될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다도라는것도 의식처럼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검도에서도 무념무상의 경지가 돼야하는
것처럼 다도도 그런 법도를 지키면서 하는 동안에 점차 명상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할수 있게 된다. 그게 다도의
매력이기도 하다" -시대의 변화에따라 문화도 변모하게 마련인데 다도는
어떻게 달라질것으로 생각하나.
""불이유행"이라는 말이 있다. 다도도 마찬가지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 도는 계속된다. 패션이라는것은 올해가 다르고 내년이 되면 또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다도라는것은 과거 5백년간 계속돼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질것이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바뀌겠지만 다도 그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 단지 1백년전쯤 서양으로부터 테이블과 의자가 수입돼
"테이블다"라는게 생기긴 했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게 없다. 따라서
다라는것을 너무 특수한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웬일인지
일본사람들은 다라는 것을 어렵고 특수한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도를 쉽게 받아들이는건 오히려 외국인들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서투른 편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도란"거추장스러운것"이라든지,"시대에 뒤떨어진것"으로 여기는
일본인들이 많다. 그러면서 일본것을 뒤켠에 밀어놓으려 한다.
일본사람들은 안된다. 일본인들은 가장 나쁘다. 모르는것은 모른다며
가르쳐달라고 하면 될텐데 모두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아는체한다. 그것은
가장 위험하다. 이런 상태로 가면 일본은 망하고 말것이다. 정친든
경제든 모두가 그렇다. 다도라는것은 "분상응",즉 자기의 본분을 깨닫는
길이다. 옛날의 일본사람들은 이런 정신을 갖고 생활해 왔었다. 하나의
물건이라도 중요시하고 이웃과 사이좋게 지냈다. 그러나 전후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분에 넘치는 생각과 생활을 해왔다. 모두가 이기적이
돼버렸다" -문화보급에도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다도보급을 위한
예산은 어떻게 마련하나.
"우리들의 문화라는 것은 본래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문화 그자체는 결코 돈이 아니다. 문화라는것은 생활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을 잘 끌어내기위해 돈이 들어간다. 그래서 "메세나"등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대기업들에 돈을 내게해서 문화활동을 하게하는데 나는
이런것을 한심한 문화라 생각한다. 문화라는 것은 결코 돈으로 되는게
아니다. 문화라는 것은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문화를 너무 대외적인 것에만 치우쳐온 감이 있다. 우라센케의 경우
재단법인이다. 다도활동을 위한 연간 예산은 35억엔 정도이다. 이는
기업으로 치자면 소기업에 지나지 않는 규모이다. 우리는 이런 예산을
회비로 충당하고 있다. 회비는 물론 회원들로부터 받는데 등록된 정회원은
20만명이다. 단체나 기업명의의 회원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두가
개인회원이다. 다도를 지도하는 선생들은 여간 2만엔,학생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로부터는 1만엔씩의 회비를 받고있다" -재단의 국제적인 조직망은.
"현재 우리재단에는 1백20명의 종사원들이 일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한국 중국등 세계 19개국에 모두 72개의 주재사무소,또는 지국을
두고있다. 한국에는 아직 사무소는 아니지만 교류회가 있다. 현재
우라센케에는 다도를 배우기위해 세계12개국에서 30명의 유학생이 와있다.
우리 재단은 "사람이 재산"인 셈이다" -다도가 국제화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화경청적"을 바탕으로한 다도의 철학은 세계평화를 위해
공헌할수 있다. 다도는 종교가 아닌 까닭에 불교나라든 기독교나라든
이슬람권이든 배척되지 않는다. 나는 이 다로인해 세계방방곡곡 거의
안가본데가 없다. 최근에는 재일 남북한민간대표를 불러 다도회를
연바있다. 베트남대통령으로부터도 초청장을 받아놓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대학으로부터는 명예교수로,중국남해대학으로부터는 정교수자격을
받아 다도를 강의하고 있다. 앞으로는 서울에서도 다도에 대해 강연할
기회가 생길것 같다" -다도의 길로 정진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패전후 미제6군사령관이었던 다이크대장의 와세다대학연설에 큰 감명을
받았던게 계기가 됐다. 그는 미국에서 배우지 않아도 일본에 멋진
민주주의가 있는데,그게 바로 다도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인생의
승부를 전통문화인 다도보급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