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민간연구소인 바텔연구소는 고돈 바텔씨의 유언으로 세워진
비영리 민간연구기관이다. 그의 유언은 "창조적인 연구를 위한 교육에
힘쓰고 금속업체및 관련기업을 돕는 기술을 개발할 연구소를 설립 해
달라"는 것이었다.

바텔은 지난 29년에 370만달러의 기금으로 30명의 직원이 모여 미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 문을 열었다. 현재는 8,000명의 연구원이 매년 9억달러에
달하는 연구비로 5,000여개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바텔은 1백% 계약연구에 의해 연구비를 충당하고있다. 정부로부터의
연구자금 역시 경쟁을 통해 따온다" 지난79년부터 91년까지 이연구소에
근무했던 오수익 서울대 기계설계학과교수의 얘기이다.

이때문에 돈되는 것이면 뭐든지 뛰어들게돼 바텔은 산업계의 기술애로를
해결해주는 산연협력의 장으로도 통한다. 연구개발력을 상업화에 집중하는
연구기관이 갖는 특성이기도하다.

고객은 산업체와 정부기관이며 다루는 분야는 초창기 금속분야에서 시작,
지금은 보건과학 컴퓨터 항공우주 환경등 거의 전부문에 걸쳐 있다.

타자를 칠때 나오는 오자를 지우는 스노페이크,골프공의 균열을 줄이기
위한 마모방지용 코팅재,자동차에 쓰이는 주행 제어장치,바코드,섭씨
50도가 넘는 온도에서도 녹지않고 모양과 맛을 유지하는 초콜릿,분해되는
플라스틱,질병진단이 가능한 호흡분석기등 바텔이 이뤄낸 업적은 수도 없이
많다.

제2차 세계대전에 사용한 첫번째 원자탄에 대한 우라늄분석및 50년대초
세계 최초로 사설기관으로서 원자력연구센터를 개설한 특이한 이력도 갖고
있다.

바텔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등 세계 48개지역에 분원을 두고 있다.
국제적인 연구소로의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복사기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제록스의 개발은 이연구소의 도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40년 발명가 체스터 칼슨씨는 건식복사를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20여개 회사를 찾아 다니나 거절 당하고 바텔에서 상품화의 결실을 거둔다.
바텔은 이아이디어의 효용성을 인정,수십만달러의 기금을 들여 10년이상을
연구,제로그래피라는 공정을 개발했다.

제록스를 통해 거둔 이익은 폭발적으로 증가,바텔은 이이익금으로 당시의
연구시설을 확장하고 해양보건 환경도시문제등 새로운 분야 연구에
뛰어들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기금이 크게 불어나자 비영리기관임에도 61년에 처음으로 세금을
내게 됐으며 지금도 과세의 대상이 되고 있다. 75년엔 법관들에 의해
바텔씨의 유언이 새로이 해석돼 바텔은 "필요"이상의 기금을 쓰지 못하게
됐다. 따라서 기금의 대부분을 자선사업에 기부해야 했으며 지금도 연간
100만달러씩이 기부금으로 나가고 있다.

오교수는 "아직도 바텔이 왕성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기금의
상당부분이 세금과 기부금으로 탕진돼 바텔의 연구개발투자가 많이
줄어들게 됐다"며 국내 관계자들이 참고할 만한 사항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