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북한"은 이제 분명해졌다.

김일성사망이 공식발표된 9일정오부터 만57시간이 지난 11일 밤9시 김정일
은 금수산의사당 지하에 안치된 김일성의 시신앞에 모습을 나타낸뒤 평양
주재외교사절들의 정중한 조문을 받았다.

후계자로서의 그의 위치를 대내외에 처음으로 알리는 순간이었다.

김정일은 김일성사망이 공식발표된후에도 일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서방
으로부터 그의 "제거"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고
평양의 방송매체들은 그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자는 점만 강조, 어떤 동정도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엄청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었다.

그러나 그의 옆에 침통한 표정으로 배석한 당.정.군의 원로와 핵심들의
면면은 확고한 후계체제구축에 아무런 장애가 없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일부에서 제기했던 것처럼 북한군부의 반발과 "궁중반란"의 의혹을
추도장면은 사실상 완전히 불식시켰다.

우선 불화설이 끊이지 않던 계모 김성애는 분명히 모습을 드러냈고 확실
하지는 않지만 이복동생 김평일도 나타났다.

일부의 지적대로 김평일의 신상에 이상이 있다면 생모 김성애가 번듯하게
자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최광 인민군총참모장, 이을설 호위총사령관등
군부최고위실세들의 모습에서도 오직 "애도"와 "충성"만이 감지됐다.

사자의 모습은 깨끗했다.

이같은 정황은 결론적으로 김일성의 사망이 적어도 쿠데타나 인위적인
유고는 아니었다는 반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제 관심은 김정일이 언제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등 통치자로서의 법통을
이어받느냐 하는 점에 모아지고 있다.

사실 법치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북한과 같은 권력승계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북한은 현재상태에서 이론적측면에서는 국가권력의 정점이 없는 때문이다.

박정희당시대통령의 유고시 우리의 경우도 즉각 대통령권한대행체제가
들어섰고 63년11월 케네디 당시미국대통령이 댈러스에서 암살당했을 때
존슨 당시부통령은 현장으로 가는 기상에서 대통령취임선서를 했다.

한순간도 공백이 있어서는 안되는 국가통치권인 것이다.

구소련같은 경우도 역사적으로 통치자의 갑작스런 사망에 따른 권력공백도
짧게는 2시간에서 길어야 이틀에 불과했다.

그러나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현재 북한권력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든 인민"의 삶 그 자체였고 신격화한 지도자의 죽음앞에서 다음 지도자
를 논의하는 자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현재의 북한사회는 산 김일성이 50년을 통치했다면 죽은 김일성이 5년은
무난히 통치할 수 있다"고 한 전문가는 설명했다.

그만큼 김정일의 후계체제구축자체는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이같은 판단에서 김정일후계체제의 공식출범은 17일의 추도대회(장례식)가
끝난뒤 공표될 것이라는 점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지금의 북한사회가 사실상의 왕조형태인 점을 감안할 때 다른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다.

김정일은 조문행사에서도 일절 말을 하지 않았다.

이는 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축적을 위해 공식절차에 따른 완전한 권력
장악시까지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이에대해 한 정부 당국자는 "권력승계를 위한 철저한 준비와 반대파에 대한
숙청계획의 진행을 뜻하는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례식전에 가능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항상 완벽을 추구하는 공산사회의 생리로 보거나 과거 소련에서 일어난
베리아의 돌연한 퇴장등 공산주의사회 권력이동의 돌연성을 김정일측근세력
이 기억하는 한 그같은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정일후계체제가 굳어진 상황에서 권력의 승계가 언제 공식화되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김정일중심세력이 과연 북한내에 자신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항거할 수 있는 세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최종 판단에 따라 결정지어질
것 같다.

<양승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