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및 개인이 외국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국내법원은 재판권을 행사, 판결할 수 있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지난 75년 5월의 대법원과 85년 9월의 하급심에서 "조약에
의하거나 외국정부 스스로가 외교상의 특권을 포기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라도 외국정부를 피고로 국내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한 판례를 뒤집은 것으로 주목된다.

서울민사지법 합의15부(재판장 권남혁 부장판사)는 22일 대림기업(주)의
대표 장교철씨(경기도 남양주군 미금시)가 지난 90년 1월 미국정부를 상대로
낸 1억4천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미합중국은 원고에게 7천6백77만원
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외국국가 혹은 외국기관의 행위가 언제나 국내법원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고 "행위의 성질에 비추어
공법적 행위가 아닌 사경제적 또는 상업활동적 행위에 관하여는 국내법원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법원의 조사결과, 미국도 지난 76년에 미국법원에서 외국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한 외국주권면제법이 제정
됐다"며 "이 법에는 상업적 활동, 신체적 상해, 재산상 손실등 6가지에
대해서는 미국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국내 법원도 재판권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와함께 "원고의 소장이 한국대사관을 거쳐 미국법무부에 송달
됐고 민사소송 담당부에 적법하게 수령된 점이 인정되기 때문에 소장송달의
하자를 다투는 피고의 주장은 이유없다"고 말했다.

소송이 제기될 당시에는 미정부는 소송에 응할 의무가 없다며 재판 자체를
회피해 소장을 보낼 방법이 없어 3년간 재판이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92년 대법원예규개정에 따라 현지 주재대사관을 통해 소장이
전달돼 미국이 변호사를 선임하는등 소송에 임해 재판이 진행됐다.

원고 장씨는 지난 80년 1월 주한미군을 위한 면세점을 운영하는 내자호텔의
계약담당자로부터 전자기기 판매점이 면세혜택을 받는다는 설명에 따라
호텔 별관 2층 상설매장 임대계약을 체결했으나 국내 세무서가 면세대상이
안된다며 부가세등 9천5백여만원의 세금을 물리자 소송을 냈었다.

이와관련 김현변호사는 "미국법원에서는 외국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미국인이 승소하게 되는등 자국의 이익보호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우리 법원이 뒤늦게나마 재판권을 인정하고 한국인의
정당한 권리보호하고 나선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법조계는 이번 판결과 관련, "국제화시대에 맞추어 우리나라도 미국
처럼 외국주권면제법등 제정, 법으로 규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