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3일로 일단 마무리됐다. 13개항의 공동성명이 발표됐으며 양정상의 공동
기자회견과 상원에서의 김대통령의 연설은 현시점에서의 한.러 양국관계를
규정하는 훌륭한 소재가 됨직하다.
누차 표명되었듯이 김대통령으로서는 새정부의 수반으로서 한반도주변
4강국 정상과의 연쇄대좌를 마무리짓는 의미를 갖는다. 다른것이 있다면
미.일 정상과의 만남은 수십년 전통의 궤도적 선상에 위치하는데 반해
중국에 이은 러시아지도부와의 대면은 아직 불완전한 동반자 관계의 확인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특이하고 또 그 나름대로의 중요성을 싣고 있다.
공개된 자료만 접할 때도 한.러 접촉은 과거 청산,현시점에서의 쌍방의
입장 조정,미래에의 공통비전 모색에 걸친 조심스런 의견접근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김대통령의 상원연설과 학위수여식 연설에서 스탈린의 한국전쟁관련
지적을 필두로 19세기 이래 양국의 은수관계와 우여곡절에 논급하고 거기서
부터 양국간 공동보조의 당위를 논증해야 하는 곤혹을 읽을수 있다.
그만큼 양국관계는 이미 구축된 신뢰위에 현안을 다루는 실질적 차원이기
보다는 상호 의중탐색을 포함한 로선조정적 성격이 강함을 감지할수 있다.
더욱이 옐친 자신을 포함한 러시아 앞날의 국운이 더욱 확고한 기반구축을
필요로 함을 고려에 넣을때 이번 모스크바 대좌의 역사성은 일면 시험적
성격마저 배제할수 없는 성격을 띤다.
더구나 시기적으로 핵관련 한반도정세의 긴박성이 절묘히 겹침으로써
역설적으로 이번 정상외교는 오히려 극적효과를 가미한다고도 볼수 있다.
공동성명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요한 합의점을 찾을수 있다.
첫째 당장의 관심사로서 러시아가 북한에 대해 무기공급을 중단하며
조.소우호조약중 유사시 군사개입 의무조항은 이미 사문화되었다는 옐친의
발언을 들수 있다.
그 회견은 세계적 시청율을 가진 미국 CNN방송의 생중계속에 행해졌다.
공동성명에서도 휴전조약의 계속유효와 북한의 핵사찰 수용의무 확인,
직통전화 운용등 5개항에 걸친 한반도 평화유지상의 공동보조 약속이
뒷받침되고 있다.
하긴 이번 방문은 이것만으로 시의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도 할수 있다.
둘째 북한이 끈질기게 고수해온 한국전쟁 도발책임의 회피를 유권적으로
뒤엎은 러시아의 증거제시이다. 스탈린의 남침동의와 지원은 사실상 공인된
역사이기에 추가시인이상 의미가 없다고 보면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북한정권 정당성의 지주의 하나이며 차후의 정세변화에도
주요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크렘린당국의 공식적 반증제시는 이 문제에
관한 다툼에 있어 최종적 확정적 효력을 가지며 또한 러시아 정부의 과거
청산 결의 표명으로도 높이 평가된다.
셋째는 국제정치에 있어서의 양국간 쌍무적 동반관계의 확인이다. 성명
1항에서 "건설적,상호보완적 동반관계"를 규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러시아
개혁에 대한 지원, 인권분야의 협력, 한국의 안보리이사국 추진등 유엔에서
의 협력, 러시아의 아.태협력체(APEC)가입 지지, 동북아 지역안보 협의채널
유지등 광범한 분야에 걸친 약속이 열거돼 있다.
이는 종래 한.미.일 단일축의 국제협력 지평을 러시아에 까지 연장하는
의미를 함축한다. 특히 어느 일방의 지원이 아니라 호혜 쌍방적 협력
이라는데 더 큰 뜻이 있다.
말하자면 북한 벌목공의 러시아 자의출국에 대한 합의는 그 1차적 이행인
셈이다.
넷째 경제협력이다. 북핵문제의 불똥만 튀지 않았었다면 양국공통의 최대
현안이었을 경협분야에선 기대만큼 큰 수확이 있었다고 하기 어렵다.
10,11항에 걸쳐 과학기술 에너지 어업 건설 자원개발의 협력증진과 교역
투자의 확대노력을 길게 나열했을 뿐 상공장관회담에서도 구체적 합의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이란 정치처럼 말한마디로 천량 빚을 갚기 어려운 과제다. 단
한번으로, 몇달로 해낼 성질이 아닐 뿐더러 논리보다는 실리가 말을 한다.
주고 받을 것이 있어야 하며 거래의 조건이 맞아야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선 성급한 결론도, 공개적 약속도 삼갈 필요가 있다.
또한 이 문제는 대통령간의 대좌보다 앞으로 극동여정의 진행과 수행관리
경제인들의 상응한 활약에도 기대를 걸만하다.
작아 보이지만 가장 찜찜한 부분은 대한항공기 피격사건의 처리이다.
9항에서 6.25와 함께 KAL기사건등 과거사 극복에서의 러시아의 노력을
한국측이 평가한다고 언급되고, 옐친이 "승무원의 과실로 판명되었으므로
항공사 책임"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미룬다면 논의는 끝난듯한 심중이 간다.
그러나 설령 항로이탈이 승무원의 책임이라고 간주한다 해도 그것이 격추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의 법리는 그리 간단치 않다. 10년이 흘렀으니 묻어
두자고 하기에는 269명의 무참한 희생이 너무 컸다는 점을 양국및 관련국
당사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일시적 부재를 우려할 만큼 급박한 상황속에 김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외교는 며칠 있어야 끝난다. 이번 두 정상의 보조일치가 플러스
효과를 가져올 공산은 있다.
그러나 현금의 정세는 이를 과신하기엔 너무 미묘해 걱정이다.